이자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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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안인이 칩거하자 한때 그와 함께 [[예종]]의 총애를 받던 [[문공미]]와 그의 사촌 아우 [[정극영]], 매부 지어사대사사 [[이영]] 등이 자주 한안인을 방문하였다.<ref name="pare1996245"/> 이를 지켜본 [[최홍재]]라는 인물이 이자겸을 찾아가 [[한안인]]과 [[문공미]]가 붕당을 맺고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말한다.<ref name="pare1996246">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246페이지</ref> [[최홍재]]는 [[예종]]시절부터 [[한안인]], [[문공미]] 두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기회에 이자겸의 힘을 이용하여 그들을 제거하고자 했던 것이다.<ref name="pare1996246"/> 일부 왕제들은 인종이 어린 점을 이용해 정변을 기도하려 했고 마침 정적을 제거하고 정국을 장악하려던 이자겸에게 호재가 되었다.
 
때마침 지난날의 일로 한안인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던 태의(太醫) [[최사전]](崔思全)이 한안인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 것을 두고 한안인이 음모를 꾸민다고 이자겸에게 모함하였는데, 한안인이 [[인종]]의 즉위를 못마땅히 여기던 점과 왕제들의 즉위에 동조했던 점을 눈여겨 본 이자겸은 이를 빌미삼아 대방공(帶方公) [[왕보 (대방공)|왕보]](王俌)를 추대하려는 역모애역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한안인을 제거한다.
 
이어 [[한안인]]은 [[승주군]] [[감물도]]로 귀양보내졌다가 도중에 이자겸의 심복들에 의해 순천 앞바다에 던져져 죽었으며, 대방공 왕보도 귀양길에 올랐다.<ref name="pare1996246"/> 그리고 [[문공미]], [[이영]], [[정극영]] 등 [[한안인]]과 자주 만났던 인물들과 [[한안인]]의 형 [[한안중]], 동생 한영륜, 종제 한충, 처제 임존, 사위 이정 등 연루자 50여 명이 유배되었고, 이들과 친분이 있는 수백 명의 관료들이 파직되거나 유배되었다.<ref name="pare1996246"/> 또한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귀양 보내거나 벼슬에서 파면, 해임 등으로 내쫓아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