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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자:Xakyntos|Xakyntos]] ([[사용자토론:Xakyntos|토론]]) 사용자에게 묻습니다..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겁니까? ==
 
{{인용문|『고려사』에 “평양에 도읍한 단군이 전조선(前朝鮮)이고 기자조선은 후조선(後朝鮮)이며… 41대 후손 준왕(準王) 때 연나라 사람 위만이 나라를 빼앗아 왕검성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조선(衛滿朝鮮)이다(卷58 志 卷12 地理)”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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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단군에 의한 조선을 전조선(前朝鮮), 기자에 의한 조선을 후조선(後朝鮮)이라 하고 위만조선을 후속시켜 고조선을 삼조선(三朝鮮)으로 나누고 있지만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이라는 이름 아래 단군조선, 기자조선을 포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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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에서도 이미 기술해 놓았듯이 '''기자조선은 단군조선과 같은 ‘조선’이지만, 구분을 위해 후조선이라 부르고 있다.'''. 학계에서 단군에 의한 조선을 전조선(前朝鮮), 기자에 의한 조선을 후조선(後朝鮮), 그리고 위만조선으로 구분하는 것이 [[고조선]]에 대한 대체적인 분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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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申采浩)는 한국의 상고시대의 역사를 서술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종래의 한국사의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식체계를 수립하였다. '''종래의 단군·기자·위만·삼국으로의 계승과 단군·기자·삼한·삼국으로의 계승되는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신채호]]는 실학시대의 이종휘(李種徽)의 《동사(東史)》에서 영향을 받아 대단군조선·고조선·부여·고구려 중심의 역사인식체계를 수립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상고사』에 대한 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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