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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부여]]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여름에는 모두 얼음을 쓰고, 사람을 죽여 순장시키는데 많을 때는 백 명을 헤아렸다(其死, 夏月皆用冰. 殺人殉葬, 多者百數)」고 전하고 있다. 한국의 《[[삼국사기]]》는 [[고구려]](高句麗) [[동천왕]](東川王)이 승하했을 때 왕을 따라 죽으려는 사람이 많았는데, 뒤를 이은 [[중천왕]](中川王)이 이것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천왕의 장례날 왕을 따라 자결했으므로 그들의 시신을 수습해 왕릉 옆에 묻고 이름을 「시원(屍原)」이라 불렀다고 전하고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가야]](加耶)의 창녕 송현동 고분군과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순장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는데, 합천 봉산면 송림리의 반계제 고분군 가A호분의 경우 순장된 자를 묻기 위한 「순장곽」이라는 공간이 존재했고 그 안에서 말의 이빨이 확인되어 말이 순장된 것으로 여겨진다. 쌍책면 옥전고분군의 묘역 6기의 석곽 가운데 82호분을 제외하면 모두 「순장곽」으로 확인되었으며 M1-3호 석곽에서는 키 170cm 정도의 성인 남자의 머리뼈와 엉덩이뼈, 그리고 이가 수습되었다. 오른쪽 엉덩이뼈 부분에 작은 칼을 차고 있었던 것과 부장품 가운데 쇠창이 포함되어 있었던 점에서 순장자는 생전 귀인을 섬기던 호위무사였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지증왕]] 3년([[502년]])에 왕이 순장을 금지하는 영을 내렸다고 하여, 공식적으로 순장이 폐지된 사실을 전하고 있다.
 
== 함께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