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기 (192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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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인천 강화군]]의 빈농가난한 가정에서농가에서 태어나 교육을 거의 받지교육받지 못한 채 어렵게힘겹게 성장했다자랐다. 아버지가아버지를 일찍 사망하여,여의고 어릴 때부터 생계를 위해유지하고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끝난 후인 [[미군정]] 시기에 [[삼팔선]] 이북의 정치를 동경하며동경하면서 [[좌익]] 운동에 입문하였고,투신하였고 [[한국 전쟁]] 중 월북하여도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들어갔다. [[조선로동당]] 간부로서 건설 부문에서 일하며일하면서 [[함경남도]] [[흥남시]]의 흥남비료공장 건설 등에 참여하였다.
 
결혼하여혼인하여 정착해 살던 중 [[1950년대]] 후반에 공작원으로 소환되어 남파되었으며, 별다른별다르게 활동은 하지활동하지는 못하고 체포되어 복역하게 되었다복역하였다. 수감 기간 중에 전향을 권유받았으나 전향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약 40년 동안40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서도 수감 기간이 긴 초장기수에 속한다.<ref>{{저널 인용
|저자=김당
|제목=분단국의 비극 장기 양심수 - 김선명씨 등 장기 복역자 전국에 74명…“이번 8·15 사면 때는 석방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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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1998년]]에 70세 이상 고령자로 분류되어 [[대전교도소]]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석방 후에도 [[보안관찰법]]에 의거한의거해 감시를감시받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남겨두고 온 가족 이야기를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조사를 받기도조사받기도 했다.<ref>{{저널 인용
|저자=박용현
|제목=더 이상 ‘사육’하지 말라 - 출소 뒤에도 감시·통제·협박하는 보안감찰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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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 1999-03-04
|꺾쇠표=예
}}</ref>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해의거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어 가족과 다시 만났다.
 
송환된 이듬해인 [[2001년]]에 송환된 장기수 가운데 [[이종환 (1922년)|이종환]]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사망했다서거했다. 사망서거 직전인 2001년 6월에 〈운명의 태양을 받드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여 [[김정일]]에 대한 지지를 밝힌 지지한다고 있다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운명의 태양을 받드옵니다 - 비전향장기수 윤용기 글
|출판사=조선중앙통신
|작성일자=2001-07-03
}}</ref> 송환 직후 다른 장기수들과 함께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고,받았고 뇌경색으로 사망한서거하고 뒤에는나서는 [[애국렬사릉]]에 묻혔다안장되었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