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치쿠 로빈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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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난으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같은 해에 [[고니시 도쿠로]]의 중개로 [[교도 인쇄]]의 [[다하시 마쓰오]]의 손에 넘어갔다. 그러나 다하시는 재벌의 아들로 인쇄업 이외의 곳에 돈을 쓰기에는 아버지의 눈이 있어 부인의 자매였던 [[오사카]]에서 섬유 무역 회사인 다무라 목장 상점(1943년 [[다무라 목장]]으로 개칭)을 경영하는 [[다무라 고마지로]]를 경영에 참여시켰다. 다하시는 '대도쿄군'이라는 이름으로는 스폰서와의 타이 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1937년]] 8월에 '라이온 치약 본점'의 이름으로 경영을 하고 있던 고바야시 상점(현재의 [[라이온]])을 스폰서로 맞이해 구단명을 '''라이온군'''(ライオン軍)이 되었다. 다하시는 '대도쿄군의 스폰서 후보는 적극적으로 신문 광고를 넣고 있는 회사가 좋다'고 생각해 라이온 치약 본점 이외에도 [[아지노모토]], [[와카모토 제약]], [[오미 형제사]]를 후보로 추렸다. 그러나 "유니폼에 'LION'을 넣는 것으로 좋다"고 말한 라이온 치약 본점 이외에는 모두 자사 제품의 이름을 넣어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결국 라이온 치약 본점이 스폰서로 낙점되었다.
 
다하시는 부모의 손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했고, 다무라 쪽이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도 해서 같은 해 가을에 팀을 다무라에게 양도해 팀을 오사카로 이전했다.
 
다무라는 다무라 목장의 지역인 간사이 지역의 인기 구단인 [[한신 타이거스|오사카 타이거스]]를 향해 대전한다는 의미에서 라이온군의 이름을 마음들어 했으나 [[1940년]] 시즌 도중에 구단 이름을 일본어화하는 것이 이사회에서 결정되어 개칭을 재촉받았다. 라이온군은 스폰서인 고바야시 상점에서 상당한 재정 지원을 받고(당시 선수 연봉의 절반이 고바야시 상점에서 자금 지원으로 지불되었다) 있었기 때문에 팀 이름의 개칭은 스폰서 해지에 구단 경영에까지 지장을 초래할 수 있었다. 각 구단이 시즌을 진행하면서 구단 이름을 변경하는 가운데 라이온군은 "라이온은 일본어이다"라고 주장하며 명칭을 바꾸지 않고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결국 [[1941년]]에 '''아사히군'''(朝日軍)으로 개칭하게 되면서 고바야시 상점과의 후원 계약은 종료가 되었다(전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니시테쓰 라이온스]]가 탄생했으나 위의 라이온군과는 직접적인 관계도 없으며 회사 라이온도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구단 노래를 증정했다). 스즈키 류지는 1941년 도중 연맹의 이사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에 아사히군에서 물러났다.
 
다무라가 팀을 맡아 팬도 늘어나고 경영 상태도 이전보다 호전되었으나 "그래도 상당히 가지고 나왔다"고 다무라 목장의 연혁에 기록되어 있다.
 
===전쟁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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