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잘루트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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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잘루트의 승리 후에 카이로로 돌아오는 도중, 바이바르스는 사냥여행 도중 쿠투즈를 배신하고 그를 살해했다. 그리고 스스로 술탄이 되었다. 그의 후계자는 1291년 팔레스타인의 최후의 십자군 국가를 멸망시켰다. 몽골군은 아인 잘루트 전투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제1차 홈스의 전투에서 또다시 패했고,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완벽하게 추방되었다.
 
내부에서 벌어진 분란은 훌라구 칸으로 하여금 아인 잘루트의 치명적인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서 맘루크에 대하여 자신의 전군을 동원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러시아에 있는 킵차크 칸국의 칸 베르케 칸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그의 사촌이 이슬람의 정신적 맹주인 아바스 칼리프를 파괴하는 것을 공포에 질려 보았다. 무슬림 역사가 [[라시드 앗 딘은딘]]은 베르케가 바그다드를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몽케칸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당시 베르케는 몽케가 중국에서 죽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인용문2|그는 무슬림의 모든 도시들을 약탈하고 칼리프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신의 도움으로 나는 그가 너무 많은 고귀한 피를 흘리는 것에 대하여 책임을 묻기 위해 불렀습니다."}}
맘루크는 무슬림이며, 그의 사촌과 친하지 않은 베르케라는 스파이를 통해 정보를 얻음으로써, 신중하게 그들의 나라를 훌라구와 그의 칸국으로부터 보호했다.
 
쿠빌라이를 최후의 대칸으로 선정함으로써, 몽골의 왕위 계승이 최종적으로 끝난 후, 훌라구는 1262년 그의 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군대를 이끌고 아인 잘루트에서 복수를 하기 위해 맘루크를 공격했다. 그러나 베르케 칸은 홀라구에 대항하여 성지에서 북방에 이르는 그의 영지에 대하여 급습을 시작했다. 훌라구는 1263년 카프카스 산맥의 북부 침략을 시도했다가, 몇 번의 패배를 겪게 되었다. 이는 몽골인들간의 최초의 내전이었고, 통합된 제국의 최후를 알리는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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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구는 아인 잘루트 이후에 맘루크를 공격하기 위해서 약 2개 만인대에 해당되는 소수의 군대를 보낼 수 있을 뿐이었다. 훌라구 칸은 1265년 사망했고, 그의 후계자이자 아들 아바카는 자신의 왕조를 설립했다.
 
훌라구 이후의 다른 칸들도 시리아, 레바논을 탈환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많은 전투를 벌였다. 1303년 맘루크는 몽골과 샤크하브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여 몽골을 패퇴시켰다. 맘루크 술탄왕조는 엄격한 셀림의 대까지 약 250년간 중동을 지배했고,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켰다. 베르케 칸과 그의 후계자들은 모스크바의 공작이 1480년 우그라 강의 대첩에서 그들의 왕국으로부터 모스크바가 독립할 때까지 240년간 동유럽을 지배했다. 가장 짧은 기간을 영위한 왕조는 [[훌라구 칸의칸]]의 왕조였다. 그의 왕조는 서남아시아를 겨우 91년간 다스렸을 뿐이다. 홀라구에 의해 세워진 일칸국은[[일 칸국]]은 1353년 분열되었다.
 
== 전투 후 상황 및 후세에 남겨진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