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 왕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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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빈 회의]]는 영국의 [[하노버 왕가]]가 다시 하노버 선제후국을 재건하여 통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하노버 선제후국에 선제후의 지위를 부여했던 [[신성로마제국]]이 이미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된 지 오래였으므로([[1806년]] 해체), 하노버 선제후국은 선제후국이 아닌 왕국의 지위로 승격되어 부활한다. 이에 따라 하노버 선제후였던 영국 국왕 [[조지 3세]]가 하노버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새로 재건된 하노버 왕국은 선제후령이었던 시기에 비해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다.<ref>Jansen, Curt Heinrich Conrad Friedrich: [http://books.google.de/books?id=tG0AAAAAcAAJ&dq=statistisches%20handbuch%20k%C3%B6nigreichs%20hannover&pg=PA3#v=onepage&q&f=false 하노버왕국 통계편람, 3쪽, 1824년].</ref> 그 결과 하노버 왕국은 [[독일 연방]] 가맹국 중 4번째로 넓은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북독일 지역에서만 비교하면 [[프로이센 왕국]]에 이어 두 번째로 넓었다.
 
[[조지 4세]]와 [[윌리엄 4세]]의 통치기간인 [[1816년]]부터 [[1837년]]까지는, 그들의 동생인 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퍼스]] 공이 하노버에서 영국 국왕을 대신하여 [[부왕]]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837년 영국에서 [[빅토리아 (영국)|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자, 123년에 걸친 하노버 왕국과 영국의 [[동군연합]]은 끝나게 되었다. 당시 하노버 왕국은 [[살리카 법|준 살리카 법]]을 왕위 계승 원칙으로 정하고 있었는데, 이 법에 따르면 남성 왕위계승권자가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경우에는 여성 왕위계승권자는 왕위를 상속받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빅토리아는 하노버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지 못하였고, 빅토리아 대신 빅토리아의 숙부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즉위하였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조지 4세]]와 [[윌리엄 4세]]의 동생으로서, [[조지 3세]]의 당시까지 생존한 아들들 중 가장 연장자였다. 아우구스트보다 동생이었던 아돌퍼스는 하노버 국왕이 되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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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버]]
* [[소독일주의]]
 
== 주석 ==
<references/>
 
== 바깥 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