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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
[[고려 문종]] 시대에 처음 도입하였다. 5등작(공, 후, 백, 자, 남) 중에서 공이 최고의 지위를 점한다. 정확히 말하면 정2품 국공(國公), 종2품 군공(郡公), 정5품 현후(縣侯), 정5품 현백(縣伯), 정5품 개국자(開國子), 종5품 현남(縣男)이다. 이는 충렬왕 때에 원의 내정 간섭으로 잠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공민왕때에 다시 부활하였다. 그러나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1401년]]에 [[조선 태종]]은 중국을 참람되게 모방할 수 없다하여 공(公)을 부원대군(府院大君)으로, 후(侯)를 [[군 (작위)|군(君)]]으로, 백(伯)을 [[부원군|부원군(府院君)]]으로 고치었다.<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B%B6%80%EC%9B%90%EB%8C%80%EA%B5%B0&keyword=%EB%B6%80%EC%9B%90%EB%8C%80%EA%B5%B0 태종 1권, 1년{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1월 25일(을유) 4번째기사]</ref> 이리하여 오등작제도는 고려 초~ 조선 초 사이에 3백년 정도 유지되었으나 사라졌다. 이후 [[대한제국]] 수립 후인 [[1906년]], [[대한제국 고종|광무황제]]는 [[심순택]]을 나라에 공이 큰 충신이라 하여 특별히 공작에 봉하였다.
 
=== 일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