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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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7년 3월 27일 승리를 거둔 카이사르는 이후 2주일 동안 클레오파트라와 지낸 뒤 이집트를 떠났다.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카이사리온]]이 실제로 카이사르의 아들이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기원전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에는 기원전 42년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협동하였으며 3년 후 결혼하였다. 결혼 후 그녀는 남편 안토니우스의 권력투쟁을 경제적으로 도운 대가로 [[페니키아]], [[유대|유다]] 등의 쓸모 있는 영토를 할양받아 확장하였다.
 
권력구조의 변화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레피두스]]와의 [[제2차 삼두정치|삼두정치]]가 깨지자 클레오파트라 7세는 BC 31년 9월 2일 명분상 자신에게 선전포고한 옥타비아누스에 대항하여 안토니우스와 함께 [[악티움 해전]]을 결행했다.
 
하지만 [[전쟁]]은 실패하였고 자신을 일개 이집트 여인으로 취급하는 옥타비아누스와 연합할 수 없음을 직감한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했다. [[뱀]]에 물려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독가스]]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자살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옥타비아누스가 죽여놓고 뱀에 물려 자살했다고 발표해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뱀에 의한 자살, 독가스에 의한 자살, 타살, [[에이즈]](AIDS) 감염에 의한 병사(病死) 등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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