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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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漢城, 현재의 서울시)은 [[조선]]의 도읍지(수도)이다. '''한성부'''(漢城府)는 한성지역을 담당하여 관할하는 관청이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조선 태조]]는 풍수 도참설에 따라 1394년 조선의 수도를 이곳으로 정하였다. 이 당시 한성부의 영역은 성곽의 사대문(四大門, 東西南北방향)과 성곽외부의 일부지역을 포함하는데, 즉 현재의 서울시의 강북지역 대부분이 포함된다. [[조선 태종]] 때, 궁궐을 확장하고 상가를 짓는 등 도시가 확장되었다. 성곽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인 유교의 [[오상]] 인의예지신(五常 仁義禮智信) 이념을 구체화하여 성문을 건축하였다. 즉, 중앙은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보신각]](普信閣)을 세우고, 동쪽에는 [[흥인문]](興仁門,보물1호), 서쪽에는 [[돈의문]](敦義門), 남쪽에는 [[숭례문]](崇禮門,국보1호), 북쪽에는 [[숙청문]](肅淸門)을 세웠다. 북쪽은 본래 소지문(炤智門)으로 하려했으나 최종 낙점은 숙청문(肅淸門, 현재 [[숙정문]](肅靖門).</ref>지금의 [[숙정문]](肅靖門) 목조 누각은 소실되었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한 것이며,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것이다.</ref>)이 되었다. 또한 한성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등의 변란을 거치면서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한성부는 정2품인 [[한성판윤]]이 최고 책임자였다. 하부 행정구역은 [[오부 (한성부)|오부]]와 방(坊)과 계(契)·동(洞)으로 구성되었다. 15세기 초 인구는 10만명 정도였다. 오늘날 서울의 중심 업무 지구 ([[도심]])를 차지하였으며 바깥에는 '성저십리'가 있었다.
 
{{서울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