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학 (185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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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정재학 일제강점기 대구은행장과 경상합동은행장의 파란만장한 삶은 각종 문헌과 도서관 탐장을 통해 업데이트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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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두 가문은 1930년대 말 [[경상합동은행]]의 경영권 공방전에서 극한 대립상황에 놓였었다.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영권 찬탈시도과정에서 정재학 가문을 돕기로 했던 민영휘 가문이 돌연 오구라에 지분을 넘김으로써 정재학가문에 크나큰 상처를 안겼다. <ref> 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 </ref> 오구라는 다른 여러 주주들의 주식까지 매수 한 뒤, 경상합동은행 주식 4500주 가운데 39.4%를 차지하면서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
반면 민씨 가문은 1957년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면서 주요주주 자리를 내놓게 된다. <ref> 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ref> <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ref> 경향신문 956년 4월 22일 1면 </ref> 조흥은행은 1995년 2월 확대이사회 결의를 통해 은행장의 순서를 조정하는 결정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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