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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립된 안시성의 저항이 완강하자 이세적은 태종에게 성이 함락되면 남자를 모두 구덩이에 파묻겠다고 했다. 포위공격이 성과가 없자 당의 장군들은 동남쪽에 있는 오골성(烏骨城)을 먼저 치고 곧바로 [[평양]]으로 직공하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종의 손자 무기(無忌)가 오골성을 공격할 때 후방에서 안시성의 고구려군이 역공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하자 이를 받아들여 계속 안시성을 공격했다. 하루에도 6~7차에 걸쳐 당군의 공격이 계속되었고 포거(抛車:투석기)가 날린 돌에 성벽이 무너지면 고구려군은 재빨리 목책(木柵)을 세워 방어했다. 당군은 성 동남쪽에 성과 같은 높이로 흙산을 쌓아 성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흙산이 거의 완성될 즈음에 갑자기 무너지면서 성벽을 무너뜨리자 고구려군은 재빨리 성벽 밖으로 나와 이를 점령하고, 나무를 쌓아 불을 지르니 당군은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태종은 책임자 부복애의 목을 베고 싸움을 독려하여 마지막 3일간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으나 끝내 실패했다.안시성 전투에서 많은 병력을 잃은 당군은 뒤이어 쫓아온 연개소문에게 크게 패퇴하고, 태종은 결국 고구려 침공이 원인이 되어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한편,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안시성주의 이름은 정사에 나와있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 [[송준길]](宋浚吉)의 《[[동춘당선생별집]]》(同春堂先生別集)과 박지원의[[박지원]]의[[열하일기]]》에는 안시성 성주의 이름을 '[[양만춘]](梁萬春)' 혹은 '양만춘(楊萬春)'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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