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로마 가톨릭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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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기리시단들의 순교 ===
일본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역사는 [[1549년]] [[예수회]] 선교사인 [[프란치스코 사비에르]]가 [[가고시마]]에 도착하여 전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예수회]],[[프란치스코]] 수도회,[[도미니코 수도회]],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등의 [[로마 가톨릭 교회]] 선교사들은 [[교회]],[[수도원]],[[학교]],[[병원]]등을 개설하였으며, [[1624년]]경에는 성직자 150명 신자 65만에 이르는 교세를 갖게 되었다 일본 로마 가톨릭 교회는 [[1587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기독교]]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면서 탄압받기 시작하였으며,[[1597년]]경에는 [[나가사키 현|나가사키]]에 26명의 로마 가톨릭 신자([[기리시단]])와 수도자,성직자들이 [[그리스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결]]하였다.
 
=== 노예제도와의 투쟁 그리고 조선인 기리시단 ===
[[일본]]의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은 선교활동만 한 게 아니라, [[노예]]제도라는 구조악에 맞서싸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로마 가톨릭 교회]] [[수녀]]인 김옥희 수녀에 의하면 [[포르투갈]] 상인들은 [[임진왜란]]때 끌려온 [[조선인]] 포로들을 [[노예]]로 사서 [[마카오]], [[인도|인디아]], 포르투갈령 [[식민지]]에 팔아넘겼는데, 이를 안 [[예수회]] 선교사들은 노예상인들을 [[파문]]하고, [[벌금]]을 물리기로 결의하였다.또한 노예로 팔린 조선인 포로들은 몸값을 내고, 기리시단 즉,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 운영하는 나가사키의 [[학교]]에서 보호하였다.그래서 [[조선인]]들도 로마 가톨릭을 믿게 되었는데, 이들을 조선인 기리시단이라고 한다. 당시 루이프로에스가 [[예수회]]에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인용문|여기 [[나가사키 현|나가사키]]에 있는 [[조선인]] [[노예]]들은 남녀노소 삼백명이 넘는다. 그중 많은 사람들에게 금년에 [[교리]]를 가르쳤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2년전에 [[영세]]를 받았으며, 거의 전부가 금년에 [[고해성사]]를 받았다. 우리는 경험에 의해 조선 백성들이 우리 거룩한 신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ref>《일본개신교회사》제 2부 일본과 기리시단의 만남,김수진 씀, [[홍성사]] p.54-55</ref>
 
조선인 신자들은 오무라 교회에서 신앙생활했으며, 일본인 [[순교]]성인중 26명중 3사람이 조선사람이라는 주장이 제기될만큼 성실한 신자들이었다. 하지만 교회사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 근현대 일본 로마 가톨릭 교회 ===
3세기가 지난후에 [[1846년]] [[파리 외방전교회]]가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교황청에서도 일본대목구장 주교를 임명하여 파견하였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전교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홍콩]]에 머무르며 전교활동을 허락받을 때를 기다렸다. 이는 개신교도 마찬가지여서, [[1859년]] 입국한 [[장로교]] 선교사이자 [[의학]][[박사]]인 헵번은 종흥사(宗興寺)라는 [[사찰|절]]에서 헌신적인 의료봉사를 하며 선교활동이 가능해질 날을 기다렸다.<ref>《일본개신교회사》제 3부 일본과 개신교의 만남,김수진 씀, [[홍성사]] p.92</ref>
 
[[1857년]] 쇄국령이 해제되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 일본대목구 3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베르나르 타디 주교는 [[영사관]] 직원들을 위한 [[선교사]] 신분으로 도착하였으며 [[요코하마]]에 교회를 지었다. [[나가사키 현|나가사키]]의 [[오우라 성당]]도 이 무렵에 세워졌다. [[1889년]] [[일본제국 헌법]]에 의해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면서 [[선교사]]들이 속속 입국하여 각지에 로마 가톨릭 교회를 건설하였다. [[1904년]] [[니가타 현|니가타]] 교구를, [[1925년]]에는 [[삿포로]]지역을 각각 선교사들이 맡아서 관리하였다. 또한 각지에 [[교회]],[[병원]],[[학교]]등을 세우는 [[사회선교]]를 하면서 [[교회]]가 다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1923년]]부터 [[히로시마]] 교구, [[1927년]] [[나가사키]] 교구,센다이교구, [[1937년]]에는 [[도쿄]] 교구가, [[1939년]]에 [[우라와]] 교구가 일본인 [[교구장]]에게 위양되었으며, [[1891년]]부터 교계제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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