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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희'''(元永喜, [[1915년]] 12월 7일 - [[1987년]] 12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지적]]학을 집대성한 지적학의 아버지이자, 교육인, 교수이며 대학자이다. 본관은 [[원주 원씨|원주]]고, 호는 삼지(三地)이다. 그의 저서는 현대 지적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호 삼지(三地)는 "세번죽어도 [[지적]]을 위하여 죽는다"에서 비롯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함경북도]] 단천 출생이며 본관은 [[원주 원씨|원주 원]]이다. 1976년 [http://www.ksc21.org/2013/ 한국지적학회] 초대회장 및 1978년 [[대한지적공사]] [http://lxcti.or.kr/index.asp 지적연수원] 교수, 1981년 [[내무부]]정책자문위원, 1981년 [http://www.lx.or.kr/ikcsc/new/index.jsp 대한지적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1981년에 복귀장학회를 창설하였다.
 
== '''사상''' ==
지적학원론(地籍學元論)에서 원영희 교수는 지적의 개념을 "[[지적]]은 국토의 전반에 걸쳐 일정한 사항을 국가 또는 국가의 위임을 받은 기관이 등록하여 이를 국가 또는 국가가 지정하는 기관에 비치하는 기록"이라 정의내렸다.
 
== '''주요 저서''' ==
[[원영희]]선생은 평생을 통틀어 수많은 저서를 출판하였다. 대부분은 지적학 및 응용천문학에 대한 내용이며 학술적인 내용 및 그의 견해를 밝힌 대표저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元永喜 (1972).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d7345961987b50bf&control_no=4535662a7d4d9edb 해설지적학(解說地籍學)], 普文出版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