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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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룸스버리 ==
1907~30년에 대영박물관에서 가까운 런던 블룸즈버리 구(區)에 있는 클라이브 부부(부인 이름은 버네서)의 집과 버네서의 남자형제 애이드리언, 버지니아 울프로 알려진 자매 버지니아 스티븐의 집에서 자주 모인 그룹을 뜻한다. 이들은 [[불가지론]](不可知論)의 입장에서 미학적·철학적 문제들을 토론했으며, G. E. 무어의 <윤리학 원리 Principia Ethica>(1903), A. N. 화이트헤드와 버트런드 러셀의 <수학원리 Principia Mathematica>(1910~13) 등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또한 이 책들의 관점에서 진·선·미의 정확한 개념을 찾고자 했으며, 모든 종류의 거짓에 대해 '대상을 가리지 않는 불손한 태도'로 기존 관념에 문제를 제기했다.
 
거의 모든 구성원들은 레슬리 스티븐의 아들 토비와 함께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트리니티칼리지와 킹스 칼리지를 나왔으며 토비가 누이 버네서와 버지니아를 여기에 소개했다. 또 이들 대부분은 1820년대말 J. F. D. 모리스와 존 스털링이 진지한 문제들을 토론하기 위해 케임브리지대학 내에 구성한 소수정예의 반지하 서클 구성원이었으며, 이 서클은 '사도회'(Apostle)라고 불렸다. 즉 존 스털링, 테니슨, 아서 핼럼,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레슬리 스티븐 등이 모두 '사도'였다. 1900년대초에는 뒤에 블룸즈버리 그룹의 핵심을 이루게 될 사람들이 '소사이어티'의 회원으로 활동했는데 바로 문학비평가 로스 디킨슨, 철학자 헨리 시즈윅, J. M. E. 맥태거트, A. N. 화이트헤드, G. E. 무어, 그리고 그 자신도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이었던 미술평론가 로저 프라이 등이었다.
 
블룸즈버리 그룹에는 소설가 E. M. 포스터, 전기작가 리턴 스트레이치, 미술평론가 클라이브 벨, 화가 버네서 벨과 던컨 그랜트,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페이비언 회원인 작가 레오나드 울프,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버지니아 울프 등이 참여했다. 그밖의 구성원으로는 데스먼드 매카시, 아서 웨일리, 색슨 시드니 터너, 로버트 트레블리언, 프랜시스 비렐, J. T. 셰퍼드(나중에 킹스 칼리지의 학장이 됨), 옥스퍼드대학 출신인 비평가 레이먼드 모티머와 조각가 스티븐 톰린이 있었다. 경제학자 제럴드 쇼브, [[버트런드 러셀]], [[올더스 헉슬리]], [[T. S. 엘리엇]]도 이따금 이 그룹과 어울렸다. 이 그룹은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해체되지 않았으나, 1930년대초에 이르러서는 본래의 형태를 상실하고 런던·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교 등의 전반적인 지적 활동과 결합하게 되었다. 구성원들이 특정한 사상과 가치관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일정한 학파를 형성하지는 않았다. 이 그룹의 의의는 놀랄 만큼 많은 수의 재능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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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 ([[1931년]])
* 《세월》 ([[1937년]])
 
== 같이 보기 ==
* [[모더니즘]]
 
== 바깥 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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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tenberg author| id=Virginia+Woolf | name=Virginia Woolf}}
 
{{생애|1882|1941|기본정렬:울프, 버지니아}}
{{토막글|작가}}
 
{{생애|1882|1941|울프, 버지니아}}
 
[[분류:1882년 태어남]]
[[분류:1941년 죽음]]
[[분류:자살한 작가]]
[[분류:영국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