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농민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300번째 줄:
 
==== 우금치, 공주전투 패전과 퇴각 ====
[[12월 5일]]([[음력 11월 9일]]) [[전봉준]]은 드디어 총공격을 명령했다. 농민군 주력 부대가 우금치를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금치는 견준산과 주미산이 만나 마든 가파른 고개로 개금티라고도 부른다. 물밀 듯 올라오는 농민군에게 정부군과 일본군의 최신 무기가 불을 뿜었다.<ref name="parkus260">박은봉, 《한국사 100장면》 (가람기획, 1993) 260페이지</ref> 시간이 갈수록 농민군의 패색이 짙어갔다.<ref name="parkus260"/>
 
{{인용문|수만이나 되는 비도(匪徒)가 4,50리에 걸쳐 길을 쟁탈하고 산봉우리를 점거하여 성동추서(聲東趨西), 섬좌홀우(閃左忽右)하면서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고 죽음을 무릅쓰고 앞을 다투어 올라오니 저들은 무슨 의리이고 무슨 담략인가. 그 정황을 말하고 생각하면 뼈가 덜리고 가슴이 서늘하다. 만약 병력이 전후좌우에서 방비하지 못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다면 맹렬히 밀어붙이는 기세에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을 것이고, 결국 그들을 막아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ref name="parkus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