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량 해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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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와 영향 ==
[[1597년]] [[5월 16일]]([[음력 4월 1일]]) 이순신은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출옥한 후 남하하여, [[6월 11일]]([[음력 4월 27일]])에 도원수 [[권율]]이 머물고 있던 [[순천]]에 도착하였다. [[8월 28일]]([[음력 7월 16일]]) 칠천량 해전에 패한 후 조선 조정은 다시 [[음력 7월 22일]]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권준]]을 충청수사로, [[김억추]]를 전라우수사로 임명하여 전력을 재편한다.<ref> {{서적 인용
| 저자 = 이민웅
| 제목 = 임진왜란 해전사
그러나 이미 대부분의 함선이 소실되고, 남해안의 제해권이 왜군쪽으로 넘어가게 되는 바람에 육군의 지원이 원활하게 진행되어 전라도까지 왜군이 침입하였다. 이때 뺏긴 남해안의 제해권은 이순신이 [[명량 해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왜군에게 있었다.
 
[[1597년]] [[8월 30일]]([[음력 7월 18일]]) 이순신은 해안 지역을 직접 돌아본 후 대책을 마련한다고 권율에게 요청하고 [[송희립]] 등 9명의 군관과 함께 현지로 출발한다. 삼가, [[단성]], [[진주]]를 거쳐 [[9월 2일]]([[음력 7월 21일]]) 노량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거제현령 안위와 영등포 만호 조계종 등을 만나 패전 상황을 듣고 대책을 논의한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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