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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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이후 김구는 그의 최측근 중 한사람이었던 [[안공근]]과 여러 번 마찰을 빚었는데, 그 뒤 [[안공근]]은 [[1939년]] [[5월 30일]] 상하이에서 실종, 피살되었다. [[안공근]]은 한때 김구의 측근이었으나 일본군이 점령한 난징에서 형수(안중근의 처)를 모셔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김구로부터 심히 질책받았고, 임정의 자금 중 일부를 개인적으로 쓴 일과, 도박으로 자금을 탕진한 일이 있었다. [[안공근]]은 김구의 심한 질책을 받고 임정 이동 대열에서 이탈하였다. 그밖에 [[안공근]]은 임정의 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기도했다. 김구는 [[안공근]]에게 부여된 [[임시정부]] 및 [[한인애국단]]의 대외 연락업무를 [[박찬익]]에게 맡겼다. 이후 안공근은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중 상하이의 한 부두에서 사라졌었다.
 
안공근은 의문의 실종을 당했고, 이후 김구의 최측근 인사인 모 독립지사의 후하들이 안공근을 제거했다는 의혹<ref name="ah1">오영섭, 한국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 (경인문화사, 2007) 302페이지</ref>이 독립운동가 후손들 사이에서 널리 언급되고 있다.<ref name="ah1"/>
 
=== 김립 암살, 무고 의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