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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한양 탈환 작전 개요 / 명군이 승리한 평양성 전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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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은 임진왜란 초에 광주 목사(光州牧使)로 있으면서 [[이치 전투]]와 [[독성산성 전투]] 등 전공을 세워 전라도 순찰사가 되었다. 권율은 행주산성에 웅거하며 명군과 합세해서 한양을 탈환하려다 명군이 [[벽제관 전투|벽제관에서 대패]]하여 평양으로 돌아감으로써 고립 상태에 빠졌다.
 
한편 일본군은 총퇴각을 하던 중 [[벽제관 전투]]에서 명군을 대파하고 한양에 머물게 되었다.
 
평양에서 남진 중이던 이여송의 명군과 협공을 펼칠 계획. 명군이 한양에서 왜군을 몰아내면 조선군은 탈출로를 봉쇄하는 작전.
평양성전투 (2차): 1593년 (선조26) 1월 6~9일, 조/명 연합군이 왜군에게 승리하며 7개월만에 평양성 탈환 [출처: 행주대첩과 리더의 실수, 임용한 한국학 박사, www.sericeo.org]
 
== 전투 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