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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 준주]]에 최초로 조직된 이민자들은 노예 주의 주민들, 특히 인접한 미주리 주에서 온 시민이었다. 그들은 캔자스 준주에 노예 주의 확대를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이민자들이 레번워스와 애치슨에 노예 제도 지지자들의 개척지를 설립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북부에서 온 반노예 조직, 그 중에서도 뉴잉글랜드 이민자 지원 회사가 캔자스에 수천 명의 개척자를 이동시켜, 그곳을 자유 주로 만들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있었다.
 
이러한 조직은 [[토피카]], [[맨하탄]], [[로렌스]] 등의 준주에 자유 주 개척지를 설립하는 데 공헌했다. 노예제 폐지 운동가 [[헨리 워드 비처]] 목사는 유사한 생각을 가진 개척자들을 샤프 라이플로 무장시키는 자금을 모으고 있었으며, 이들은 ‘비처의 바이블’이라는 정밀 소총 부대가 되었다. 1855년 여름 경에는 약 1,200명의 뉴잉글랜드의 양키가 새로운 준주로 향했으며, 무장을 갖추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남부에서는 북부 사람 3만 명이 캔자스에 내려와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1854년 11월 대부분이 [[미주리 주]]에서 경계를 넘어온 ‘보더‘[[보더 러피안’러피안]]’(Border Ruffians, 경계 불한당)이라는 무장한 노예제도 지지자 수천 명이 캔자스로 들어가 준주에서 미국 하원에 보낼 1명의 하원 의원 선출을 지배하려고 했다. 등록 유권자의 투표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600명 이상의 투표자 중에 합법적인 투표자 수는 20명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노예 제도 옹호자들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당시 캔자스 준주에는 약 1,500명의 등록 유권자가 있었으며, 그 모두가 실제로 투표한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투표자 수는 6,000표 이상이 나왔다. 더 중요한 것은 보더 러피안이 첫 번째 준주 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된 [[1855년]] [[3월 30일]]에도 같은 일을 반복하여 노예제도 지지자의 승리로 끝낸 것이었다.
 
노예제 지지자로 굳어진 준주 의회는 [[1855년]] [[7월 2일]]에 포니(Pawnee)에서 소집되었지만, 일주일 후에는 미주리 주 경계의 쇼니 미션으로 옮겨서 거기서 캔자스 준주에서 노예 제도를 합법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1855년]] 8월, 프리 소일러의 한 무리가 결집하여 준주 의회에서 성립된 노예 제도 옹호법을 거절하는 결의를 했다. 이 집회에서는 토피카 헌법의 윤곽을 잡고 그림자 정부를 만들었다.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이 [[1856년]] [[1월 24일]]에 미합중국 의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토피카의 정부가 정당한 지도층에 대한 ‘혁명’이라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