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곤 (1919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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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1919년]]에 한성[[한성부]](현재 서울)에서 태어났다. 광복 후, 손위 형들이황손들이 모두 출계하였기 때문에 친왕 의왕[[사동궁]](義王寺洞宮, 의왕부)의 사자사손(嗣, 상속자) 되었다.
 
* [[1952년]]부터 [[문화재청|구황실재산관리국]]([[1945년]] 이후, 현 [[문화재청]](1999년이후))의 허가를 얻어 [[덕수궁]]에서 7년간 거주하였다.
 
* [[1953년]]에 국유재산이 된 구왕궁재산 700만환에 해당하는 건물과 토지를 불법매각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3년이 구형되었으나, 범죄의 동기가 생활난이고, 6.25 사변 이전에는 국가에서 보조금을 주었으나 그 이후로는 주지 못한 사실 등에 비추어 정상참작하여 2년 징역에 5년 집행유예가 언도되었다.<ref>{{뉴스 인용
* [[1964년]]에 황호현 의원의 알선으로 국회사무처직원(경비직)으로 취직하였다.
 
* [[1968년]]에 [[영휘원]](永徽園) 문화재관리국 임시직원(산림보호직) 한경숙씨(韓景淑氏, 47세)가 "왕족이면 다냐, 나가자"라는 폭언과 함께 황손(皇孫 李錕, 57세)의 집([[영휘원]] 재실)의 기물을 부수기도 하고, 황손을 [[영휘원]] 사무실에서 폭행하여 전치 4주의 중상을 입혔다며 황손이 한씨를한씨(韓氏)를 고소하였고, 한씨도 황손에게 맞아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며 맞고소를 제기하여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둘이 함께 입건되었다. 황손은 [[덕수궁]]에서 살아오다가 [[1962년]] [[덕수궁]] 개축 때 집이 헐려 서울 [[청량리|청량2동]] 205번지 [[홍릉]] 옆에 있는 [[영휘원]](永徽園, [[순헌 황귀비]] 엄씨의 묘소) 재실로 거처를 옮겨 매년 임대료 2250 원을 물고 살아왔다.<ref>{{뉴스 인용
|제목 = 갈 곳 없는 왕가의 후예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060600329203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8-06-06&officeId=00032&pageNo=3&printNo=6972&publishType=00020
|날짜 = 1968년 6월 6일}}</ref>
 
* [[1969년]] 4월 23일에 [[문화재청|문화재관리국]]([[문화체육관광부]] 소속, 현재 [[문화재청]]([[1999년]] 이후)이 미관상의 이유로 황손의 청량2동의 집을 철거하였다. 문화재관리국은 철거하기 전에 7번이나 [[경고장]]을 보냈으나 황손은 돈이 없어 옮기지 못하다가 집이 철거당하게 된 것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의친왕 아들 곤씨 가족 길가에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904240032920302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9-04-24&officeId=00032&pageNo=3&printNo=7244&publishType=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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