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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출사표엔 ''선제께서 신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세번이나 몸을 낮추어 초려를 찾아주시고 신에게 친히 형세의 일을 물으시니 신은 감격하여 선제께 이 한 몸 바치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출사표]]내용
이것으로 보아 제갈량이 거짓으로 지어낸 인물이아니고 당시 형주출신사람들과 [[조운]] 도있었기에 거짓으로 말할 일이없다.
 
(융중대隆中對 or 초려대草廬對)
 
“동탁 이래 호걸들이 아울러 일어나 주(州)를 타넘고 군(郡)을 연결한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조조는 원소에 비하면 명성은 미약하고 그 군사는 적었으나 마침내 원소를 이겨 약자에서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천시(天時) 만이 아니라 또한 인모(人謀-사람의 꾀)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조는 백만 군사를 거느린 채 천자를 끼고 제후에게 호령하므로(挾天子而令諸侯) 실로 그와 쟁봉(爭鋒)할 수 없습니다. 손권은 강동을 점거해 차지한 지 이미 3대가 지났고, 나라는 험하며 백성들은 귀부하고 현능한 이들이 쓰이고 있으니, 가히 동맹으로 삼을지언정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형주(荊州)는 북쪽으로 한수, 면수에 의지해 그 이익이 남해(南海)에 다다르고, 동쪽으로 오회(吳會-오, 회계)와 연결되고 서쪽으로 파(巴), 촉(蜀)과 통하니 이는 용무지국(用武之國-용병할 요충지)입니다. 그러나 그 주인이 능히 지킬 수 없어, 이는 거의 하늘이 장군께 주려는 것이니 장군은 취할 뜻이 있으십니까?
 
 
 
 
익주(益州)는 험색(險塞-험준하고 막혀있음)하며 옥야(沃野-기름진 들판) 천리의 천부지토(天府之土-기름지고 물산이 풍부한 땅)로, 고조(高祖-한고조 유방)께서 이에 의지해 제업(帝業)을 이루었습니다. 유장이 암약(闇弱-어리석고 나약함)하여 장로가 북쪽을 차지하고 있는데, 민은국부(民殷國富-백성은 넉넉하고 나라는 부유함)하나 백성들을 다독일 줄 모르니 지혜롭고 재주 있는 선비들은 명군(明君) 얻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제실(帝室-황실)의 후예인데다 사해에 신의(信義)를 떨쳤으며, 영웅들을 총람(總攬)하며 현인 그리워하는 것을 목마른 사람이 물 찾듯 하십니다. 만약 형주, 익주를 타넘어 차지해 그 엄조(巖阻-험조)함에 기대고, 서쪽으로 제융(諸戎-여러 융족들)과 화친하고 남쪽으로 이월(夷越)을 어루만지며, 밖으로는 손권과 결호(結好-화친을 맺음)하고 안으로는 정리(政理-정치)를 닦으면서, 천하에 변고가 있을 때 한명의 상장(上將)에게 명해 형주의 군사를 이끌고 완(宛), 낙(洛-낙양)으로 향하게 하고 장군께서는 몸소 익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진천(秦川)으로 출병하신다면, 단사호장(簞食壺漿-대나무 그릇에 담은 밥과 호리병의 국)으로 장군을 영접하지 않을 백성이 감히 누가 있겠습니까? 실로 이처럼 한다면 가히 패업(霸業)이 이루어지고 한실(漢室)이 흥할 것입니다.”
 
하지만 [[원소 (후한)|원소]](袁紹)를 정벌하고 남하하는 [[조조]]에게 맞설 수 없던 [[유비]]로서는 남으로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제갈량은 [[유비]]에게 동맹을 권하러 온 [[노숙]]을 따라 [[손권]]에게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손권]]과 [[유비]]는 이후 [[적벽]]에서 [[조조]]를 격파한다.([[적벽대전]]) [[209년]] 겨울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