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비 노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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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창성군 노진의 딸로, 본관은 [[교하]]이고, [[경산시|경산]] 출신이다.<ref>{{뉴스 인용|제목="경산에 '고려 왕비족' 유적지 있다" |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2584&yy=2007|작성일자=2007-10-01|확인날짜=2012-06-03}}</ref> [[1389년]] 남편 정창부원군이 [[조선 태조|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고려 공양왕|공양왕]])으로 추대되자 그녀 역시 왕비가 되었다. 공양왕은 노씨를 위해 의덕부를 설치하고 관속을 두었다.<ref name="pyk">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개정증보판)》 웅진닷컴, 2004, p.527, ISBN 8901047535</ref> 소생으로는 세자 [[왕석]]과 숙녕, 정신, 경화궁주가 있다. 그녀는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된 뒤 공양왕과 함께 원주로 유배되었고, 남편을 따라 고성, 삼척 등지로 유배를 다녔다.<ref name="pyk"/> [[1394년]] 공양왕이 사약을 받을 때 함께 사사되었다.<ref name="pyk"/>. 남편과 함께 물에 투신자살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공양왕릉과 광중 혈토|url=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70828001248&ctg1=12&ctg2=&subctg1=12&subctg2=&cid=0101051200000&dataid=200708282001000027|저자=이규원|출판사=세계일보|작성일자=2007-08-30|확인일자=2012-06-02}}</ref> 순비 노씨의 능은 공양왕릉과 함께 경기도 원당과 강원도 삼척에 있다.<ref name="pyk"/>
 
[[노씨]]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