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창 (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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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원래는 종형 [[주가 (전한)|주가]](周苛)와 함께 [[진나라|진]](秦)나라의 사수군의 졸사를 지냈다. [[전한 고제|유방]](劉邦)패현에서패현(沛縣)에서 봉기하고 사수수를 무찌르면서 주창과 함께 유방을 섬겼으며 직지(職志)를 맡았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한왕에한왕(漢王)에 봉해지면서 중위가중위(中尉)가 되었다.<ref name="s96">[[사마천]]: 《[[사기 (책)|사기]]》 권96 장승상열전</ref>
 
한왕 4년 3월([[기원전 203년|기원전 203]]), 형양을 지키던 종형 주가가 [[항우]](項羽)에게 죽자, 종형의 후임으로 어사대부를어사대부(御史大夫)를 지냈다.<ref>위와 같음, 권7 항우본기</ref><ref>위와 같음, 권8 고조본기</ref><ref name="s96"/> 초한전쟁 중에는 내사 견(內史堅)과 함께 오창을 지키며 어사대부로써 제후들을 안정시킨 공로로 2천 8백호를 받았다.<ref name="s18">위와 같음, 권18 고조공신후자연표</ref>
 
성품이 강직하고 직언을 잘 해, [[소하]](蕭何) · [[조참]](曹參) 등도 주창을 멀리했다. 고제가[[전한 고제|고제]](高帝)가 연회를 열고 있는데 상주할 일이 있어 찾아갔다가 바로 달아나왔는데, 쫓아온 고제에게 목덜미를 잡혀 질문을 받았다. “나는 어떤 임금 같냐?” 대답했다. “폐하는 [[걸 (하)|걸]](傑)과 [[제신|주]](紂)와 같습니다.” 고제는 대답을 듣고 웃었지만 더욱 주창을 두려워했다.<ref name="s96"/>
 
고제는 원래 총희 [[척희척부인|척]](戚)씨의 소생의 [[유여의]](劉如意)를 [[전한 혜제|태자 영]] 대신 태자로 삼으려 했지만, [[고황후]](高皇后)나 [[장량]](張良) 등의 반대로 결국은 그만두고 대신 유여의를 조나라조(趙)나라 왕으로 봉했다. 이때 조왕 여의의 나이가 10살밖에 되지 않아, 고제는 자신이 죽은 후 조왕의 안전을 걱정했다. 마침 곁에 있던 어사(御史) 조요에게조요(趙堯)에게 물어 주창을 조나라의 상국으로상국(相國)으로 삼았는데, 이 명령을 받은 주창은 좌천을 당하는 것이기에 울며 항의했으나 고제의 설득을 받고 조나라 상국으로 부임했다. 후임 어사대부는 조요가 맡았다.<ref name="s96"/>
 
고제가 죽은 후, [[고황후]]는고황후는 조왕을 소환했으나 그때마다 주창이 왕의 병을 칭탈해 불응했다. 세 번을 반복하자 고황후는 먼저 주창부터 소환해 질책하고는 조왕을 소환해 1달 만에 독살했다. 주창은 병을 칭탈해 사직하고 3년 후에 죽었다.<Ref name="s96"/>
 
고제가 죽은 후, [[고황후]]는 조왕을 소환했으나 그때마다 주창이 왕의 병을 칭탈해 불응했다. 세 번을 반복하자 고황후는 먼저 주창부터 소환해 질책하고는 조왕을 소환해 1달 만에 독살했다. 주창은 병을 칭탈해 사직하고 3년 후에 죽었다.<Ref name="s96"/>
==가계==
[[파일:주가.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