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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묘소 = 경기도 가평군 가평리 하색읍 산81
|관직 = 봉호: 추성협보공신, 충렬공(忠烈公) 직책: 중랑장, 호군, 대호군, 추밀원부사, 서북면도지휘사, 중서평장정사
|주군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가문 = 함안 이씨
 
정세운을 죽인 김용은 2월 29일에 행재소로 온 안우를 목인길을 시켜 끌어내 죽인 뒤, 공민왕을 달래어 「안우 등이 충성하지 못하여 제마음대로 정세운을 죽였기 때문에 그는 이미 죄를 받았다. 김득배와 이방실을 붙잡아 오는 자는 중한 상을 준다.」는 방을 붙이고 대장군 오인택(吳仁澤), 만호 박춘(朴椿)ㆍ김유(金庾)ㆍ정지상(鄭之祥) 등을 나누어 보내 그들을 체포하게 하였다. 이 날 이방실은 왕이 있는 행재소(당시 왕은 복주를 떠나 상주에 있었다)에 나아가려고 [[용궁현]](龍宮縣)까지 왔었는데, 박춘이 왕의 교지가 있다고 하여 이방실이 뜰에 내려가 꿇어앉자 오인택이 칼을 뽑아 이방실을 쳤다. 이방실은 곧 넘어져 기절하였다가 한참 만에 다시 깨어나 담을 넘어 도망쳤고, 박춘이 그를 쫓아가 붙잡자 이방실은 박춘이 차고 있던 칼을 빼앗아 맞서려 했으나 정지상이 뒤에서 이방실을 쳐서 죽였다고 한다.
 
== 일화 ==
조선 초의 문인인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이방실의 일화가 두 편 수록되어 있다.
 
; 도적을 만난 이방실
: 이방실이 일찍이 서해도에 갔다가 길에서 우연히 훤칠하고 키가 큰 사내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활과 화살을 손에 들고 이방실이 탄 말 앞에서 「영공(令公)은 어디로 가십니까. 모시고 가겠습니다.」라고 청했는데, 사실 사내의 정체는 도적이었다. 이방실은 그 사람이 도적임을 알아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허락했다. 10리쯤 가다가 사내가 논 한가운데 앉아있는 비둘기 한 쌍을 가리키며 「공(公)은 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이방실은 화살 한 발로 두 마리를 명중시켜 보였다. 날이 저물어 빈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방실은 잠깐 동안 말을 보고 오겠다며 차고 있던 활과 화살을 도적에게 주고는 마굿간에 웅크리고 앉았다. 드디어 도적이 마굿간 안으로 활을 쏘아댔고, 이방실은 날아오는 화살들을 일일이 손으로 잡아 마구간에 끼어 두었다. 화살이 모두 떨어지고 도적은 이방실에게 빌면서 살려 달라고 하였는데, 이방실은 옆에 있던 상수리나무 위로 몸을 위로 솟구쳐 나뭇가지 끝을 휘어잡으며 한 손으로 도적의 머리칼을 붙잡아 나뭇가지 끝에다 매고는 칼로 머리 가죽을 벗겼다. 휘어졌던 나뭇가지가 튕겨져 솟구치면서 그 탄력으로 도적의 머리칼은 그 자리에서 모조리 뽑혀버린 채 몸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대로 이방실은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br>세월이 흘러 지위도 높아지고 지긋한 나이가 된 이방실이 다시 예전 자신이 갔던 그곳을 지나다가 어느 농가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는데, 그 집은 매우 큰 부잣집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나와 이방실을 맞이한 주인 노인은 크게 술상을 차려 이방실을 대접했고, 술이 취하자 노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용맹스러운 것만 믿고 도적이 되어 숱한 사람을 죽이고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 한 소년을 만났는데, 비할 수 없이 용맹스러운 자였습니다. 그를 해치고자 하였으나 도리어 내가 해를 입고 죽다가 살아났지요. 그 뒤로 개과천선하여 농업에 힘을 쏟아 다시는 사람들의 물건을 빼앗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모자를 벗은 노인의 머리는 반질반질하여 머리칼이 하나도 없었다.
 
; 이방실의 누이동생
: 이방실에게 누이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오빠와 마찬가지로 용감하고 맹렬한 성품이었다. 항상 작은 나뭇가지를 벽에 꽂아두고 남매가 나뭇가지 위를 올라다니는데, 이방실이 올라가면 나뭇가지가 살짝 움직였지만 누이동생이 올라가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누이동생이 비쩍 여윈 사동(使童)을 데리고 여윈 말을 타고 강남(江南)으로 건너가는데,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서로 먼저 건너려고 다투다가 그만 누이동생을 들어 내렸다. 누이동생은 몹시 화가 나서 노를 들어다 배를 타려던 사람들을 마구 두들겨 팼는데, 그 굳센 모습은 마치 [[새매]] 같았다.
 
== 묘소 ==
이방실의 묘가 위치한 곳의 현 행정구역명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리 하색읍 산81번지로, 정부인(貞夫人) 진주 강씨(晋州姜氏)와 영산 신씨(靈山辛氏) 두 부인을 합장한 무덤이다. 경기도 기념물 52호이다. 현재의 묘역은 1970년대에 재정비된 것이다.
 
== 관련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