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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초기: 김반이 아들인데 김반의 링크가 강릉 김으로 나오므로 해당 인물이 아니므로 링크 삭제
[[파일:Kimjangsaeng 01.jpg‎|thumb|left|120px|할아버지 [[김장생|사계 김장생]]<br />[[서인]] 예학의 종조였다.]]
 
광남 김익훈은 [[1619년]] [[사계 김장생]]의 손자이자 [[참판]]을 지내고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김반]]의김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첨중추(僉中樞) 김진려(金進礪)의 딸이다. 예학자이자 [[북벌론]]자이며 [[조선 효종|효종]] 때 [[민회빈 강씨]]의 사면 복권을 주장하던 신독재 [[김집 (1574년)|김집]]의 조카였다. [[인경왕후]]의 조부이자 [[병자호란]] 때의 순절신 [[김익겸]](金益兼)은 그의 형이며, 인경왕후의 친정아버지인 [[김만기 (조선)|김만기]]와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저자 [[김만중]] 형제들은 그의 조카였다.
 
[[송시열|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송시열은 [[이이]]와 할아버지 김장생, 숙부 김집의 학맥을 계승한 서인의 학자이며 [[성리학]], [[예학]]의 권위자였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한 그는 [[조선 인조|인조]] 때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강화도]]로 피난갔다가, [[여진족]]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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