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수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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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598년589년 [[수나라]]는 오랜 후한 삼국시대 이후 남북조시대를 거쳐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을 마침내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진 (남조)|진]]을 멸망시키고, 장성 이북의 동, 서[[돌궐]]과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동태를 살폈으며, 마침내 수 문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에 대비하여 방어 준비를 하였다. [[수 문제]]는 이 사실을 듣고 글을 보내 이를 꾸짖었다. 598년 고구려의 [[고구려 영양왕|영양왕]]은 [[말갈]]병 1만 명을 동원하여 요서(遼西))를 선제 공격하였고 수비하던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이 겨우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선제공격은 수나라의 북방 요충지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수 문제는 진노하여 제1차 [[고구려-수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제1차 고구려-수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