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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장관 고문 시절 ===
[[1950년]] [[4월 19일]] [[트루먼]] 정권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 아래서 고문에 취임했다. 같은해 [[5월 18일]]에는 [[대일강화조약]]의 체결을 담당하는 대통령 특사로 임명됐다. 1950년 6월 20일에는6월에 국무장관 고문으로서 방한해한국을 방문하여, [[대한민국 제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19일)하고, <ref>{{뉴스 인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5081900329202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5-08-19&officeId=00032&pageNo=2&printNo=2977&publishType=00020|제목 = 光復十年의 발자취(19) : 六 ․ 二五事變|작성일자 = 1955-8-19|출판사 = 경향신문|인용문 = <!--制憲國會의 任期가 끝날 무렵 政府에서는 政界는 勿論이요 一般의 物議를 무릅쓰고 第二次總選擧實施를 遲延시키는 한편 赤字豫算의 編成을 試圖하였으나 當時 이를 反對하는 美國務長官「애치슨」氏의 覺書到達로 말미암아 政府에서는 從來의 主張을 變更하여 五· 三十選擧를 實施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是非曲절 끝에 五․三十選擧가 實施되었고 1950년6월19일 열린 개원식에는 현미국무장관 「떨레스」씨가 참석하는 등 아세아의 민주보루로서 洋洋한 앞날이 약속되었던 것이다.--> }}</ref> 38도선을[[38도선]]을 시찰했다시찰(20일)했다. <ref>{{뉴스 인용|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00619002091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0-06-19&officeId=00020&pageNo=1&printNo=8300&publishType=00010 |출판사 = 동아일보 | 작성일자 = 1950-6-19 |제목 =덜레스氏 38線視察 |인용문 = <!--지난 十七日 來韓하여 同日下午五時에는 景武臺로 李大統領을 禮訪뒤이어 同夜에는 貞洞에 있는 “무치오”大使官邸에서 同大使晩餐會에 參席하는 等 繁多한 訪韓第一日의 日程을 마친 國務省顧問 “존{{.cw}}포스터{{.cw}}덜례스” 一行은 第二日인 十八日上午八時에는 政府側의 案內下에 東北”아시아”局長 “엘리슨”氏를 帶同하고 汽動車로 議政府를 거처 東豆川方面의 三八線接境을 視察하고 下午三時傾歸京하였다.-->}}</ref> [[1951년]] [[9월 8일]]에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과 [[일본]]간에 체결된 평화 조약([[대일강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의 공로자로서 국제적 칭찬을 얻었다. 또한 1950년과 195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일본]]의 안보적 조약들을 협상하기도 하였다.
 
=== 국무장관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