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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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대 총선'''(大韓民國第二代總選)은 4년 임기의 [[대한민국 제2대 국회|제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로 [[1950년]] [[5월 30일]]에30일에 치러졌다.
==경과==
===배경===
[[1950년]] 초, [[이승만]]은 예정되어 있던 총선에서 패배할 것으로 예상되자, 이를 [[12월]]로12월로 연기하려고 했다. 또한 적자예산의 편성을 시도하였다. 이에 대해 [[1950년]] [[4월]] 초순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엄중 경고하였다.<ref>1950년 초,~엄중 경고하였다.: 이호재, 《한국외교정책의 이상과 현실:이승만외교와 미국정책의 반성》(법문사,2000),430쪽.</ref> 결국 [[이승만]]은 선거를 예정대로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ref>결국 이승만은~수 없었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50년대편 1권〉(인물과사상사, 2004) 38쪽. 결국 [[대한민국 제헌국회|제헌국회]]에서 마련한 새로운 국회의원 선거법에 의하여 [[1950년]] [[5월 30일]]에 실시하기로 하였다.
</ref><ref>{{뉴스 인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5081900329202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5-08-19&officeId=00032&pageNo=2&printNo=2977&publishType=00020|제목 = 光復十年의 발자취(19) : 六 · 二五事變|작성일자 = 1955-8-19|출판사 = 경향신문|인용문 = <!--制憲國會의 任期가 끝날 무렵 政府에서는 政界는 勿論이요 一般의 物議를 무릅쓰고 第二次總選擧實施를 遲延시키는 한편 赤字豫算의 編成을 試圖하였으나 當時 이를 反對하는 美國務長官「애치슨」氏의 覺書到達로 말미암아 政府에서는 從來의 主張을 變更하여 五 · 三十選擧를 實施하였던 것이다. --> }}</ref>
</ref>
===입후보===
경쟁률은 의원정수 210명에 대하여 무려 2,209명이 출마하여 평균 10.5 대 1로 역대선거 중 가장 높았다. 이러한 과열경쟁의 결과는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제헌국회 총선]]에 불참하였던 [[남북 협상파]]와 중간계열의 참여 그리고 [[대한민국]]을 수립한 지 2년간에 조성된 정치적 과열현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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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석정수 : 210의석
*선거제도 : 소선거구제
*투표일 : [[1950년]] [[5월 30일]]
 
== 선거 결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