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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생활: 퀴로스 > 키루스(Cyrus the Younger)
(퀴고스 2세 > 퀴로스, 퀴로스 2세는 키루스 2세, 본문의 퀴로스는 다른 인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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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용병 생활 ===
크세노폰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학자들 대부분은 그가 기원전 430년경 [[아티케]]의 도시국가 [[아테나이]] 근처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ref>Encyclopedia Brittanica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650658/Xenophon ''History of Xenophon'']</ref> 크세노폰은 상류층 출신이었으면 고대 아티케 귀족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기원전 401년 젊은 시절에 크세노폰은 퀴로스가키루스(Cyrus the Younger)가 자신의 형인 [[페르시아|아케메네스 제국]] 대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에 대항하는 원정길에 떠났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퀴로스의키루스의 원정에 참가해야 할지를 놓고 아테나이 출신의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는데,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탁]]에서 신과 의논해 볼 것을 권하였다. 그래서 크세노폰은 그리로 가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여행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목적을 달성한 뒤 무사히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떤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기도드려야 하는지 아폴론 신에게 물었다.<ref name="ap86">크세노폰, [[천병희]] 역, "아나바시스" 2001, p.86.</ref> 그러나 아폴론은 그가 어떤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야 하는지 알려주었다.<ref name="ap86"/> 크세노폰은 돌아와서 소크라테스에게 예언을 말해주었다.<ref name="ap86"/>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그것을 듣고, 그가 여행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머무는 것이 좋은지 먼저 묻지 않고 여행하기로 혼자서 결정하고는 어떻게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겠는지 물었다고 그를 나무랐다.<ref name="ap86"/> 그래서 크세노폰은 아폴론이 알려 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나서 배를 타고 떠나 퀴로스에게키루스에게 갔다.<ref name="ap86"/>
 
[[파일:Persian Empire, 490 BC.gif|thumb|400px|크세노폰과 용병 [[일만 인 (그리스)|일만 인]]의 경로.]]
 
대왕의 동생인 퀴로스는키루스는 [[팃사페르네스]]와 싸운다는 핑계로 페르시아 인 병사로 구성된 거대한 군대를 모았으며, 거기다가 그가 페르시아 병사보다 뛰어난 전사라고 여겼던 [[고대 그리스|헬라스]](그리스) 군대도 모았다. 대왕에 전쟁을 선포하기 전에, 퀴로스는키루스는 [[피시디아]] 사람들이 전쟁 상대라고 공언하였으며, 헬라스 사람들은 자신들이 페르시아 대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어마어마한 군대와 싸우게 될 것임을 알지 못하였다. [[타르소스]]에서 헬라스 병사들은 퀴로스가키루스가 대왕을 몰아내려고 원정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퀴로스를키루스를 따르는 데 거부하였다. 그러나 [[스파르타]] 출신의 클레아르코스가 헬라스 사람들을 설득하여 계속 원정대에 남았다. 퀴로스의키루스의 군대는 [[쿠낙사 전투]]에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 헬라스 군대는 선전하였으나, 퀴로스는키루스는 전사하고 만다. 그러자 얼마 안되어 클레아르코스 장군이 네 명의 다른 헬라스 장군과 함께 휴전 회의에 초대받았으나, 페르시아인들은 이들을 배신하고 장군들을 참수하였다. "[[일만 인(그리스)|일만 인]]"으로 알려진 이들 헬라스 용병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심장부와 가까운 적대적인 내륙 한가운데서 지휘자도 없이 버려졌음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크세노폰을 비롯한 새로운 지휘관을 뽑았으며,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페르시아, [[아르메니아]], [[쿠르드]]를 지나 북쪽으로 [[흑해]] 연안의 [[트라페주스]]로 진군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용병대는 서쪽으로 가 고국 [[그리스]]로 귀환하였다. 그 곳에서 용병대는 스파르타의 티브론 장군의 군대에 들어가 [[세우테스 2세]]가 [[트라케]]의 임금이 되는데 도왔다.
 
크세노폰이 쓴 [[아나바시스]]('올라가기'라는 뜻.<ref>퀴로스키루스 2세가 군대를 거느리고 저지대인 소아시아의 해안지대에서 쿠낙사 전투가 벌어진 [[티그리스 강]]과 [[에우프라테스 강]] 사이의 고지대로 행군한 것을 의미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기원전 3세기 전반)는 그의 크세노폰 저서 목록에서 '아나바시스'란 표현을 쓰고 있다. 크세노폰, [[천병희]] 역, '아나바시스', [[단국대학교]]출판부, pp.10~11.</ref>)는 그가 페르시아로 원정을 떠났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여정을 담은 자신이 쓴 기록이다. 이 저서는 후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을 떠날 때 지리서로 쓰였다.
 
== 망명과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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