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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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10.1103/PhysRevLett.19.1264
}}</ref>을 발표했고, 이휘소는 논문 게재 심사를 의뢰받아 이를 읽게 되었다. 와인버그는 이 논문에서 약한 상호 작용에 관한 설명을 시도하였다. 약한 상호 작용은 자연계의 네 가지 상호 작용 중 하나인데, 이러한 네 가지 상호 작용들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빛알]], [[글루온]] 등의 [[게이지 보존]]들이다. 이들은 모두 게이지 대칭성 아래에서 존재하고 있는데, 이 대칭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일단 [[게이지 보존]]의 질량이 0이어야 한다. 그러나 약한 상호 작용을 중개하는 위크 보존만큼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이는 그때까지의 통념으로는 선뜻 받아들여지기 힘들었고, 약한 상호 작용에 관해서는 현상론적으로만 정리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 무렵 [[스티븐 와인버그]]는 [[자발대칭파괴|이 게이지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졌다]]고 하여 거기서부터 게이지 입자의 질량을 자연스럽게 얻으려는 독창적인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비록 그 논문에서 모든 계산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 방법이 맞을 거라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다.<ref group='주'>방법이야 어찌되었든, 이것이 [[양자장론|장의 양자론]]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또한 [[재규격화]]가 가능함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위크 보존이 큰 질량을 가졌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정상적인 게이지 대칭성을 가지고 있는있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재규격화]]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ref><ref name="lhs"/>
 
이휘소는 [[1968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ref group='주'>이 시민권 취득 심사 때 그의 박사후 연구원이었던 윌리엄 A. 바딘({{lang|en|[[:en:William A. Bardeen|William A. Bardeen]]}})이 이휘소의 인성(人性) 증언을 하기도 했다.</ref> 그는 미국 시민이 된 직후, 이듬해인 [[1969년]]까지 [[구겐하임 펠로십]]([[1968년에 수여된 구겐하임 펠로십의 목록]], No.128)으로 일했는데, 이 기간에 그는 그는 프랑스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lang|en|[[:en:Leave of absence|Leave of absence]]}})를 보내면서 파리 제 11대학교({{lang|en|[[:en:Paris-Sud 11 University|Paris-Sud 11 University]]}})에서 세미나를 갖기도 하고, [[고등연구원 (프랑스)|프랑스 고등연구원]]에서 자유롭게 연구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자발 대칭 깨짐|자발적으로 대칭성이 부서지는 현상]]과 그에 의한 [[난부-골드스톤 보손]]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머리 겔만]]과 모리스 레비({{lang|en|Maurice Lévy}})가 정립한 선형 [[시그마 모형]]의 [[재규격화]]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집필하였다.<ref name="sigma1">{{cite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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