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탄젤로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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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omaCastelSantAngelo.jpg|thumb|250px|<small>산탄젤로 다리에서 바라본 산탄젤로 성의 야경</small>]]
[[파일:Castel santangelo Tevere.jpg|thumb|250px|산탄젤로 성]]
'''산탄젤로 성'''({{llang|it|''Castel Sant'Angelo''|카스텔 산탄젤로}}) 또는 '''하드리아누스의 영묘'''는 [[로마]]에 있는 원통 모양의 건축물로 원래는 [[로마 제국]]의 [[로마 황제 연대표#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세운 무덤이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로마 교황청]]의 성곽 겸 요새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의 정면에는 [[고대]]에 세워진 [[산탄젤로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는 아직도 로마에서 산탄젤로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건물의 평면은 사각형으로 둘러싸인 원형인데 사각형의 각 모서리에는 개별적으로 설계된 망루가 있다. 중앙에 우뚝 솟은 원통형 부분은 홀·경당·주택·중정 및 교도소로 이루어져 있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서 3막에 여주인공이 뛰어내리는 성벽의 배경도 바로 이 산탄젤로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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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하드리아누스의 건설 ===
[[파일:View_Castel_sant_angelo.jpg|left|thumb|150px|<small>산탄젤로 성에서 바라본 로마 시내</small>]]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영묘는 [[135년]]부터 [[139년]]에 [[티베르 강]] 오른쪽 연안에 세워졌다. 하드리아누스는 자신과 가족의 묘지로 사용하고자 건설을 시작했는데, 그가 죽고 난 1년 후 [[138년]]에야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에 의해 완공을 보게 되었다. 폭 89m, 높이 15m로 솟아 있는 받침지반은 벽돌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둘레 64m, 높이 21m의 원형 드럼처럼 생긴 묘지가 세워졌다. 이 묘역을 이루는 모든 건축물은 원래 대리석으로 덧씌워져 있었고 현재의 출입구는 원래의 것보다 더 높다고 한다.<ref>한형곤, 《로마 똘레랑스의 제국》, (주)살림출판사,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358-1 2004. 81쪽</ref> 그 이후 [[카라칼라]] 황제 시대까지 묘지로 쓰였다. 중앙의 커다란 방에는 하드리아누스와 더불어 카라칼라까지의 후예 황제들이 묻혀 있다.
 
원래는 수많은 조각품과 석상들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401년]] 영묘가 군사 요새로 개조되면서 많은 부분이 유실되고 [[호노리우스]]가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을 세울 때 재료로 쓰였다. 영묘 단지의 유해들은 [[410년]] [[서고트족]]의 [[알라리크]]가 로마를 약탈할 때 상당 부분 약탈당했고 이후 [[537년]] [[고트족]]의 로마 공성전 때도 파괴되었다.
[[Image:Angel da Montelupo SantAngelo.jpg|thumb|right|<small>문테루포의 원래 미카엘 대천사상
]]
</small>]]
[[파일:Angel Van Verschaffelt SantAngelo.jpg|thumb|<small>베르샤펠트의 현재 미카엘 청동상</small>]]
산탄젤로라는 이름은 [[590년]] [[그레고리오 대교황]]이 [[흑사병]]이 물러나기를 기원하는 참회의 기도를 올리다 흑사병의 종말을 뜻하는 광경, 즉 [[대천사 미카엘]]이 이 성 상공에서 칼을 칼집에 넣는 환시를 보았고 해서 전해진다. 이 사건 이후 지금의 ''산탄젤로''(성천사[聖天使])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이 사건을 기리려고 [[1536년]] 조각가 라파엘로 다 몬테루포는 이 건물 꼭대기에 대천사 미카엘의 대리석상을 세웠다. 대천사의 손에는 당시 로마에 창궐하던 전염병이 퇴치되었음을 선언하는 의미로 칼이 쥐어져 있다. 대천사상 옆에는 사형을 처할 때 울리던 자비의 종이 매달려 있다. [[플랑드르]]의 조각가 페터 안톤 폰 베르샤펠트가 [[구리]]로 제작한 현재의 대천사상은 [[18세기]]에 제작되었으며 여섯 번째의 것이다. 첫 번째 대천사상은 나무로 만들었고 그 뒤로는 대리석으로 만들었다가 모두 무너졌다. 현재의 대천사상은 1789년에 [[프랑스]] 침략군에 의해 [[프랑스의 국기]] 색깔로 칠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ref>한형곤, 《로마 똘레랑스의 제국》, (주)살림출판사,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358-1 2004. 8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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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의 성, 피난처, 그리고 교도소 ===
[[파일:Clement VII bathroom SantAngelo.jpg|left|thumb|<small>[[교황 클레멘스 7세]]의 세면실</small>]]
[[14세기]]에 들어서면서 여러 [[교황]]이 이 영묘 단지를 성곽으로 고쳤고 [[중세]] 동안 내내 교황의 전용 피난처이자 요새, 그리고 교도소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