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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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落星垈)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228번지에 위치해 있다. 낙성대는 별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이다.
 
== 개요공원 조성 ==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낙성대(落星垈)는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姜邯贊, 948∼1031)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를 보존하고, 강감찬 장군을 기리기 위해 조성하였는데 [[1973년]] [[11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74년]] [[6월 10일]]에 공원 조성이 완료되었다. 면적은 3만 1,350㎡이었다.
낙성대는 별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이다. 강감찬 장군의 어머니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품속에 와서 안기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ref>[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17983.html 낙성대·말죽거리엔 무슨 사연 담겼을까]《한겨레》2008-10-24 오후 07:27:47</ref>
 
== 전해지는 이야기 ==
강감찬 장군의 어머니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품속에 와서 안기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출생지에 큰 별이 떨어졌다는 의미로 낙성대라고 이름을 붙였다. <ref>[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17983.html 낙성대·말죽거리엔 무슨 사연 담겼을까]《한겨레》2008-10-24 오후 07:27:47</ref> 조선 초기의 문신인 성현(成俔, 1439~1504)이 쓴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강감찬이 몸집이 작고 귀도 조그마했다고 전한다. 관상이 실제 맞는지 어떤지는 모를 일이지만, 강감찬의 관상만은 귀인상이었다고 전한다.
 
어느 날 키 크고 잘생긴 선비를 관리 복장을 하게 하고 자신은 허름한 옷을 입고 그 뒤에 섰는데, 송나라 사신이 한눈에 강감찬을 알아봤다고 한다.
 
송나라의 사신이 가난한 선비를 보고, “용모는 비록 크고 위엄이 있으나 귀에 성곽(城郭)이 없으니, 필연코 가난한 선비다.” 하고, 강감찬을 보고는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려 절하며, “염정성(廉貞星)이 오랫동안 중국에 나타나지 않더니, 이제 동방(東方)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고려사]]》는 [[강감찬]]을 가리켜 문곡성의 화신이라 했고, 《용재총화》는 염정성의 화신이었다 전한다. 아마도 구전되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내용상 차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일화에 등장하는 문곡성은 북두칠성의 4번째 별로 문운(文運)을 주관한다. 반면에 북두칠성의 5번째 별인 염정성은 형살(刑殺)을 주관한다.
 
북두칠성은 일곱 별마다 도교적 색채의 이름이 있다. 국자의 맨 앞별에서부터 차례로 탐랑성∙거문성∙녹존성∙문곡성∙염정성∙무곡성∙파군성이라 한다. [[강감찬]]이 과거에 장원급제한 문신이면서도 거란을 물리친 무장의 재능을 갖추었기 때문에 두 별이 등장한 듯싶다. [[중국]]에서는 문곡성의 화신을 판관 포청천으로 봤다. 그 문곡성이 [[중국]]에서 [[고려]]로 건너온 셈이니 그가 바로 강감찬 장군이라는 얘기다.
 
=== 안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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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references/>
 
== 참고 문헌 ==
* 『한국중세사회사연구』, 이수건 저, 일조각(1984년)
* 『서울육백년사(六百年史)』, 문화사적편(文化史蹟篇),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1987년)
 
[[분류:서울 관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