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청천강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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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24일]] 맥아더(MacArthur) 라인의 철폐선언에 따라 [[만포진]]-[[신의주]]의 한만국경선을 목표로 무제한진격을 개시한 미 제8군은, [[10월 25일]]에 [[김종오]] 준장이 이끄는 제6사단의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와 미 제1군단의 우익인 [[백선엽]] 준장이 이끄는 제1사단이 각각 [[온정리 전투]]와 [[운산-영변 전투]]에서 중공군 대부대와 접전하여 격전을 벌임으로써 새로운 양상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박부택임부택]] 대령이 이끄는 제6사단 7연대는 [[초산]]까지 진격하였다가 명령에 따라 반격을 시작하여 [[두만강]]변에서 또 다시 중공군의 급습으로 분산된 데에 이어 제2연대를 증원한 [[김익렬]] 대령이 이끄는 제6사단 19연대와 [[고근홍]] 대령이 이끄는 제8사단 10연대가 [[온정리]] 부근에서 중공군의 공세로 큰 타격을 받았다.
 
한편 [[운산]]으로 진격한 제 1사단이 완강한 중공군의 저항으로 진격이 계속 지연되자 미 제8군 사령관 [[월턴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프랭크 W. 밀번]](Frank W. Milburn) 소장이 이끄는 미 제1군단 예비로써 [[평양]]-[[진남포]] 경비 임무를 담당 중이던 [[허버트 R. 게이]](Hobart R. Gay) 소장이 이끄는 미 제1기갑사단을 운산으로 진출시켜 제1사단을 초월하는 즉시로 한만국경선을 목표로 진격토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