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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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 {{국기나라|영국}} [[버크셔]] [[윈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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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코부르크고타의작센코부르크고타 대공 앨버트'''({{lang|en|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1819년]] [[8월 26일]] - [[1861년]] [[12월 14일]])는 [[영국의 빅토리아]]의 남편이자 [[영국의 에드워드 7세]]의 아버지다. 본명은 '''프란츠 아우구스트 카를 알베르트 에마누엘 폰 작센코부르크고타'''({{llang|de|Franz August Carl Albert Emmanuel von Sachsen-Coburg und Gotha}})이다.
 
그는 당시 유럽을 다스렸던 많은 군주와 연고가 있었던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작센 공작령]]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에 그는 사촌지간인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하여 아홉 명의 아이를 두었다. 처음에 앨버트는 아무런 힘이나 관공직도 주어지지 않은 여왕의 배우자라는 자신의 처지를 갑갑하게 생각하였다. 죽을 때까지 그는 노예 제도 철폐와 교육 개혁 등 일반 대중의 요구 가운데 많은 부분을 받아들였으며, 여왕의 왕실 일가와 재산, 관청을 관리하는 일을 도맡았다. 앨버트는 1851년에 열린 국제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정치적인 면으로 봤을 때의 그는 아내에게 의회 내에서의 정치적 당파 싸움에 중립을 지킬 것을 권고함으로써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