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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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브레 동맹을 주도한 교황 율리우스 2 세는 여러 강국(서유럽의 대부분)들을 끌어들여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공화국이었던 베네치아의 지위에 철퇴를 내리고 교황령 주도의 이탈리아 통일을 꿈꾸었다. 하지만 캉브레 동맹의 전쟁중에 개신교의 세가 강해졌던 신성 로마 제국의 군대는 로마를 '부패의 상징'이라 생각해 약탈했고 사실상 이 전쟁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도시 국가들은 스페인이나 프랑스와 같은 강국의 허수아비로 전락한다. 베네치아는 그나마 이 전쟁에서 승리한 덕분에 당분간 자신들의 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여 부와 무역의 주도권은 [[대서양]]으로 넘어가자 지중해 무역의 중요성은 점차 떨어졌다. 동방과의 교역은 [[지중해]]가 아니라 [[대서양]]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무역에 의존하는 베네치아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1571년]]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레판토 해전 (1571년)|레판토 해전]]에서 승리하지만 베네치아는 오히려 [[키프로스]]를 상실했다. 이후 [[1606년]] [[교황 바오로 5세]]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의 분쟁을 중재하면서 [[개신교]]에 유리하게 중재한 베네치아에게 선전 포고를 하고 베네치아를 파문해 버렸다. 이미 무역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베네치아는 이후 18세기에는 무라노 섬의 유리 공예와 뛰어났던 가공 기술들을기술들, 이용해그리고 관광업을 통해 근근히 먹고 살 수 있었다.
 
=== 공화국의 몰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