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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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비스마르크]] 시대에 만들어진 사회주의자 탄압법의 폐지에 따라 [[독일로]] 귀국하였다. 1903년 드레스덴 전당 대회에서 수정주의 부인이 결의되어 베른슈타인은 공식적으로는 패배하였으나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는 강력한 지지를 얻어냈다. 1902년에서 1918년까지 [[제국의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1913년 [[사회민주당]] 좌파와 함께 군사력 증강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1917년 [[카를 카우츠키]]와 함께 [[독일 독립사회민주당|독립사회민주당]](USPD)에 참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 1919년 사회민주당에 복귀하였다. 1920년부터 1928년까지 [[바이마르 공화국]] 의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1921년 [[괴를리츠 강령]] 기초를 도왔다. 1932년 12월 18일에 베를린에서 사망하였다.
==사상==
베른슈타인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두 기둥인 [[역사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비판하였다. 그는 자본주의로 인해서 부의 집중과 사회적 궁핍화가 점점 더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는 점차 복잡해지고 적응력도 커지고 있다고 관찰하였다. 즉, 그는 사회주의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자본주의가 붕괴되어 사회주의가 출현할 것을 기다리기보다 현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계급투쟁의 필연성은 역사적으로 부정확할 뿐 아니라 정치직으로정치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을 쇠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중간계급과 농민들은 노동자들과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진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ref>셔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후마니타스, 2010년</ref>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