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메이 대분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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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메이 대분화'''는 [[1783년]] [[아사마 산]]위 [[분화]]를 덴메이 대분화 라고 부른다말한다. 덴메이 분화로 인하여 상공으로 분출된 [[화산화]]는 햇볓을 차단하여 수년간 계속된 [[냉해]]를 가져왔다. 이 냉해는 [[덴메이 기근]] 이라고 부른다. 덴메이 대기근으로 피폐화된 농촌에는 [[식량난]]과 [[전염병]] 등이 생겼다.특히 동북 지방에서 다수의 아사자가 나와 각지에서 민란과 폭동이 일어나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웠다..또한 [[아사마 산]]이 [[대분화]]를 일으켜 북쪽으로 12km 떨어진 [[간바라]] 마을에서는 모든 가옥이 [[화산쇄설류]]에 매몰되어 주민의 85%가 목숨을 잃었다.
 
 
 
==발굴 조사==
 
약 200년이 지나 1979년 매몰된 마을을 발굴하는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조사에서 [[화산쇄설류]]에 매몰된 분화의 희생자로 판단되는 두 사람 분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 전에도 부근에서 어른과 어린이 한 사람씩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화산쇄설류]]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유골이 발견된 많지 않은 사례이다.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21108&cid=200000000&categoryId=200003609] 두산백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