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혁명당 사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진상 규명과 그 이후==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중앙정보부 조작 사건이라고 발표하다.
*[[2004년]] [[11월 2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 위원장 오충일)가 인혁당 사건의 진상 구명규명 조사를 개시하다.
*[[2005년]] [[12월 7일]]: 국가정보원 과거사위가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다.
*[[2005년]] [[12월 27일]]: 재판부가 인혁당 사건에재건위 사건(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소를 받아들였다.
*[[2006년]] [[12월 18일]]: 검찰이 이례적으로 구형없는 논고를 하다.
*[[2007년]] [[1월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8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다.
*[[2007년]] [[8월 21일]]: 인혁당사건 희생자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소에서 서울지방법원은 국가가 총 637억여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다.
*[[2010년]] [[1월 28일]]: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10개월간 복역했던 일본인 다치카와 마사키(太刀川正樹, 당시 28세)에 대한 재심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되다.
*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재심이 청구되다
 
*[[2013년]] [[11월 28일]]: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다.
===보수 세력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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