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치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Yjs5497 (토론 | 기여)
35번째 줄:
동학농민전쟁의 가장 큰 전투이자 승패의 분수령이 된 결전이었던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한 원인으로는, 크게 1) 보유 무기의 심각한 열세, 2) 연합전선 실패로 인한 병력 분산, 3) 훈련받지 못한 농민군과 지휘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첫번째로첫 번째로 무엇보다 보유 무기 면에서 정부-일본연합군이 갖고 있던 무기의 화력이 동학농민군에 비해 월등했다. 농민군의 총은 심지에 불을 붙여 쓰는 화승총으로 사정거리가 불과 100보에 분당 2발을 발사하는 수준인데다 그마저도 갖지 못한 사람은 죽창으로 싸워야 했다. 그에 반해 일본군은, 사정거리가 400-500보를 넘고 분당 12발을 쏠수 있는 소총에다 막강한 화력의 미국제 개틀링 기관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두번째로는, 동학농민군은 모든 힘을 한곳에 모으지 못하고 분산됐다는 점이다. 손화중, 김개남, 최경선 등의 농민군 정예부대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공주 전투에 함께하지 못했고 결국 농민군은 병력면에서라도 확실한 우위를 가질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