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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로와 영향 ==
[[1971년]] [[6월 13일]]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는 연방정부가 '최고 기밀서류'로 취급하고 있던 이 보고서로 연재기사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에 3회분 기사가 실린 후 미국 법무부는 연방 제1심 법원으로부터 국가기밀서류의 공표를 금지시키는 임시명령을 얻어내었는데, 이때 법무부는 이 보고서를 계속해서 국민들에게 보도한다면 미국의 안보이익에 '치명적이며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 타임스〉는 역시 이 보고서를 입수하고 있던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지와 연합하여 법원의 금지명령에 대항해 15일 동안 법정투쟁을 벌였고, 이 기간 중 연재기사는 중단되었다. [[1971년]] [[6월 30일]]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전억제 명령 사건사전제한사건(prior-restraint case)으로 간주된 이 재판에서 연방대법원은 6 대 3의 판결로 양 신문사에게 문제의 보고서를 다시 게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또한 법원은 이 보고서의 공표를 제한하기 위한 연방정부의 주장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베트남 참전]]의 구실로 내세운 ‘[[통킹 만 사건]]’은 [[북베트남]]의 도발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미국 군대가 조작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공해상에서 공격받았다는 미 구축함 매독스호는 사실 북베트남 영해를 수시로 넘나들던 암호명 데소토라는 정보 수집 함정이었으며,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 구축함을 공격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북베트남을 전쟁 도발 국가로 알고 있었던 미국 국민들은 이후 큰 충격에 빠졌으며, 〈뉴욕 타임스〉의 후속 보도와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베트남전쟁이 미국 정부와 군수기업체, 광신적 반공주의자들이 결탁한 침략 전쟁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