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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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고문관인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네 엘리자베트 텍스토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북독일]]계 아버지로부터는 '체격과 근면한 생활 태도'를, [[남독일]]계의 어머니로부터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짓는 흥미'를 이어받았다.
 
어려서 천재교육을 받았으며, [[7년 전쟁]] 중 그의 고향이 [[프랑스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프랑스]] [[연극|극]]과 [[회화]]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레트헨과의 사랑([[1763년]]-[[1764년]])이 깨어진 후 16세 때 입학한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재학중재학 중([[1765년]]-[[1768년]]), 안나카타리나 쇤코프와 연애를 하였고, 이 체험을 통해 [[로코코]]풍의 [[시]]나 희곡을 발표하였는데 목가조의 희극 <애인의 변덕>, <공범자>가 그것이다. 분방한 생활로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하여 요양 중([[1768년]]-[[1770년]]), [[:de:Susanne von Klettenberg|수산네 폰 클레텐베르크]](1723-1774)와의 교제를 통하여, 경건한 종교감정을 키웠으며, 또한 [[신비과학]]이나 [[연금술]]에 흥미를 기울였다. 회복 후, [[177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법률박사 학위를 얻었다. 그러던 중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헤르더]]와 상봉해, [[문학]]의 본질에 눈뜨고 [[성서]], [[민요]], [[호메로스]], [[윌리엄 셰익스피어|셰익스피어]] 등에 친숙해졌다. 그의 영향으로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알게 되고 당시 지배적이었던 프랑스 [[고전주의]] 미학에의 반발이 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