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털링 다리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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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사전에 등재된 단어 몇을 빼고는 ‘여럿의 가운데’의 뜻이든 ‘무엇을 하는 동안’의 뜻이든 ‘중’은 명사이므로 그 앞을 띄어 쓴다. using A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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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영향: 사전에 등재된 단어 몇을 빼고는 ‘여럿의 가운데’의 뜻이든 ‘무엇을 하는 동안’의 뜻이든 ‘중’은 명사이므로 그 앞을 띄어 쓴다. using AWB)
스털링 다리 전투는 잉글랜드의 완벽한 패배였다. 이 싸움은 지형에 따라 보병이 기병보다 더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스코틀랜드 군이 이 교훈을 완벽하게 습득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이 전투에서 앤드루 드 모레이를 뺀 스코틀랜드군 사상자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모레이가 전투중에전투 중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전투 뒤 몇 주동안 명목상이나마 윌리엄 월리스와 같이 지휘권을 행사하다가 11월 쯤 패혈증으로 결국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1300년 11월 모레이의 삼촌 보드웰의 서 윌리엄 드 모레이(Sir William de Moray of Bothwell)사건 심문기록처럼 앤드루 모레이가 '스털링에서 전투중전투 중 죽음을 당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월리스는 잉글랜드 북부에 여러차례 과감한 선공을 가했는데, 이 싸움이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향배를 좌우하지는 못했으나, 군대 사기에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 1298년 3월 윌레스는 이 전투의 공로로 [[스코틀랜드의 수호자]](Guardian of Scotland)의 지위에 올랐다. 월리스가 세력을 넓혀가자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는 자기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플랑드르]]에서 북쪽으로 진격하였고 웰레스와의 싸움을 준비했다. 둘은 1298년 여름 [[폴커크 전투 (1298년)|폴커크]](Falkirk) 평원에서 마주쳤는데, 이 때는 윌리엄 월리스가 졌다.
 
== 픽션의 스털링 다리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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