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무성서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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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이 위치한 태인은 이미 신라 시대에 [[태산현]]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신라 시대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도 이곳의 현령을 지냈다. 최치원이 합천의 군수로 전출된 뒤, 고을 사람들이 최치원을 기리기 위하여 유상대(流觴臺) 위에 생사당을 지었는데 이것이 선현사(先賢祠)이고, 조선 시대인 성종 15년([[1484년]])에 선현사를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 바로 태산사(泰山祠)로 무성서원의 전신이다. [[광해군]] 7년([[1615년]])에 태산사 자리에 현지 선비들이 서원을 짓고, 80여 년이 지난 [[1696년]] 사액을 받았다.
 
서원의 배치는 약간 경사진 땅 위에 강당과 사당을 잇는 직선축을 중심으로 정문인 누각 현가루와 내삼문을 배치하고, 주변에 전사청과 교직사, 비각 등을 세웠다. 사당은 정면 3칸, 강당은 정면 5칸이고, 강당과 재실은 모두 마루와 온돌이 결합된 양식이다. 무성서원의 구조적 특징은 다른 서원과는 달리 재실이 담 밖에 세워졌다는 점이다. 서원에는 최치원 외에도 조선 시대의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을 배향하였다.
 
무성서원의 교육 목표와 내용 및 방법 등 일체의 교육과정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는 《원규》(일종의 학칙)에 따르면 서원에서는 유학 가운데서도 특히 [[성리학]]을 공부하는데 힘썼는데, 《격몽요결》, 《소학》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를 읽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입학 기준에 있어 나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독서에 뜻이 있고 배우고자 하는 자는 모두 허락하였지만 일단 입학하게 되면 반드시 용모를 단정히 하고 오로지 정신을 통일하여 의리를 깨우침에 힘쓰며 서로 돌아보고 잡담하지 말 것을 엄격히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