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드 보부아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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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사후: 사전에 등재된 단어 몇을 빼고는 ‘여럿의 가운데’의 뜻이든 ‘무엇을 하는 동안’의 뜻이든 ‘중’은 명사이므로 그 앞을 띄어 쓴다. using A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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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는 1986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 있는 사르트르의 묘 옆에 그녀의 시신이 묻혔다. [[1968년]] 이후 [[여성주의]]의 어머니로서 뿐만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과 기타 등등의 학문적 업적으로 그녀를 프랑스의 주요한 사상가로 보는 시각이 대두하면서 사망 이후 그녀에 대한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서로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현재 논의가 진행중이다진행 중이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관계 없는 철학 저술도 여럿 남겼지만, 사르트르의 걸작인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보부아르가 초기에 쓴 철학 논고와 논문이 나중에 사르트르의 사상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학자들도 있다. 마거릿 A. 시몬스(Margaret A. Simons)와 샐리 숄츠(Sally Scholtz) 등의 철학계 안팎의 많은 학자들이 보부아르의 사상을 연구했다. 보부아르의 생애는 또한 여러 전기로 쓰였다.
 
2006년 건축가 디트마르 파이히팅거(Dietmar Feichtinger)가 그녀의 이름을 따 [[센 강]]을 가로지르는 시몬 드 보부아르 인도교(Passerelle Simone-de-Beauvoir)를 설계했다. 여성적 곡선이 특징인 이 다리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으로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