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위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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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개요: 사전에 등재된 단어 몇을 빼고는 ‘여럿의 가운데’의 뜻이든 ‘무엇을 하는 동안’의 뜻이든 ‘중’은 명사이므로 그 앞을 띄어 쓴다. using A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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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패망한 일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기 전에 조선인들을 마구 학살하고 떠난다거나 해방 직후에 민중 내에서 친일파를 처단한다는 이름으로 사적인 감정에 기인한 마구잡이식 보복성 살인으로 사회 분열이 일어나고 혼란이 일어나 힘없는 사람들이 거기에 말려 억울한 피해를 입을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민위원회는 각 면별로 국민학교, 중학원등을 설립하여 자치교육을 실시하기도 하는 등 실질적으로 마을행정을 주도하였다.
 
또한, 이들 지방 자치정부들은 실질적인 통치를 하여 각각 여러 정책들을 시행했었는데, 주로 과거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의 재산을 한국인들에게 귀속시켜 배분시켜야한다는 것과 농업문제,토지배분,노동문제등 해결하고자 힘썻었다. 따라서 일제가 물러남에 따라 당시 공백기였던 한반도에 민간인들이 스스로 질서정연하게 결성한 지방 민중자치기구인 인민위원회는 순조롭게 진행중이었다진행 중이었다.<ref>[[건국준비위원회]]문서 참조 바람. 8월말 무렵에 건준은 각 지역별로 120여개 지부로 확대되어 자치기구가 형성된다. 그럼에 따라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다.</ref>
 
초기에 인민위원회는 사상을 넘어서 좌우합작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조직력에서 앞선 좌익계열 세력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곧이어 9월에 미군과 소련의 한반도 진주 이후, 남한지역에 입성한 미군은 '인민위원회가 공산주의계열 조직망'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맥아더 포고령]] 제1호를 통해서 이를 전면 부인하고 군정을 선언함으로써 과거 일제시대때 친일파였던 군,경찰,관료들을 대거 등용하게 된다.<ref>이는 [[미군정]] 관리로 근무했던 리처드 로빈슨이 '인민위원회나 건준을 불인정하고 해체시킨것은 매우 치명적인 실수였다.'라고 증언하였다. -KBS 인물 현대사- 여운형편 참조.</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