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김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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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식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 판단한 이장춘 당시 싱가포르 대사와 안기부 현지주재관이 윤태식의 기자회견을 열지 말아야 한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장세동]] 안기부장은 현지의견을 받아들여 기자회견 보류를 지시했으나, 이후 마음을 바꿔 네 시간 만에 다시 강행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장춘 대사는 횡설수설하는 윤태식이 기자회견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결국 싱가포르와 외교마찰을 우려해 [[1987년]] [[1월 8일]] 제3국인 [[타이]] [[방콕]]에서 1차로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로 송환된 [[1987년]] [[1월 9일]] 김포공항에서 2차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장춘 대사는 싱가포르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라는 본국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쓰기도 했다.)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을 '북한 여간첩이 미인계로 순진한 남편을 꼬드겨 홍콩에서 월북시키려다가 남편이 가까스로 탈출한' 일종의 활극처럼 보도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10800209210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1-08&officeId=00020&pageNo=10&printNo=20082&publishType=00020 김옥분 호스티스 생활 - 마카오 자주 출입] - 동아일보 1987년 1월 8일</ref> 생계를 위해 일본에 드나들던 술집 여종업원은 일본 조총련계 간첩단과 연루된 미모의 여간첩으로 둔갑하였고 남편 윤태식은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반공투사'가 되었다. 1986년 가을부터 [[KBS]]에서는 《남십자성》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가 방영되었는데, 수지김 사건 이후에는 아예 '수지김'이라는 여간첩이 드라마 배역에 등장하기도 했다.<ref>[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367.html 안기부가 일일이 대본 고쳤다] - 한겨레 21 제394호</ref>
 
{{인용문|지금까지는 반공, 반공해도 그 의미를 몰랐으나 우리가 왜 반공을 해야하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윤태식의 귀국 인터뷰<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11000329211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1-10&officeId=00032&pageNo=11&printNo=12704&publishType=00020 "살아 돌아온게 꿈만 같다."] 경향신문 1987년 1월 10일</ref>}}
윤태식은 곧바로 남산분실로 연행되어 엄중히 추궁을 받았으며, 결국 자신이 부인을 살해하였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자진월북하려 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안기부는 윤태식이 이와 관련해서 함부로 발설하지 말도록 했으며, [[1991년]]부터는 해외에 나가지 못하도록 출국금지를 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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