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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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의원 활동 ===
[[1920년]]부터 [[1933년]]까지 [[경상북도]] [[도평의회]] 의원(1920년, 1924년, 1930년에는 민선 [[도평의회]] 의원, 1927년에는 관선 [[도평의회]] 의원으로 임명됨) 등을 지내면서 지방의 유지로 활동하던 문명기는 [[1935년]] [[비행기]] 구입을 위한 거액의 국방헌금을 기부하였는데 [[조선총독부]] 공보국은 이를 어느 독지가가 보내온 "애국의 지성(愛國의 至誠)"이라며 크게 보도하고 헌납식까지 열면서 선전함으로써 그도 전국적인 친일파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35년]] [[10월]] 자신이 경영하던 영덕금광에서 발견한 두꺼비 모양의 금덩어리를 일본 천황에게 헌납했으며 문명기가 기증한 비행기에는 "문명기호문명기 호(文明琦號)"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39년]] [[8월]] 북지위문 경북도회의원 광제회(廣濟會)의 대표로 중국 화북과 만주에 있는 일본군을 위문하고 돌아왓다. 그는 이때 이미 자살 폭격을 옹호하는 선구적인 친일 활동을 했고 [[조선국방비행헌납회]]를 조직하여 비행기 헌납 운동을 벌였으며 여러 곳에 강연을 다니며 침략 전쟁을 지원할 것을 역설하거나 중국 전선의 부대를 방문하여 군인들을 위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