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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지 못한 [[가남풍]]은 299년, 사씨(謝氏)의 소생인 태자 사마휼(司馬遹)을 미워하여 태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음모를 꾸민다. 사마륜은 이러한 [[가남풍]]을 보고 분노해 그를 공격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손수]]의 만류로 일단락되었다.
 
300년 3월 사마휼이 [[가남풍]]에 의해 죽자, 사마륜은 4월 측근 [[손수]]를 시켜 양왕(梁王) 사마융(司馬肜)을 부추겨 황제의 조서를 위조해 혜제의 사촌 동생인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과 함께 [[가남풍]]을 붙잡아 황후의 자리를 빼앗고 가밀(賈謐)등 가씨 일족을 몰살하는 동시에 이전부터 원한을 품고 있던 [[장화]]와 배위 등 많은 관리들을 살해하고 일부는 그 삼족을 멸했다. 다시 허위 조서를 내세워 전국의 군사를 손아귀에 넣고, 세번째세 번째 허위 조서를 내세워 내쫓긴 [[가남풍]]을 독살했다.
 
그해 5월 죽은 태자 사마휼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 아들인 사마장(司馬臧)을 황손(皇孫)으로 봉하고 혜제를 가까이서 보좌하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독단적으로 행동하여, [[손수]]가 그를 부추겨 중앙에서 세력을 독점하게 해 혜제의 동생 회남왕(淮南王) 사마윤(司馬允)과 제왕 사마경 등을 중앙에서 몰아내려 했다. 사마윤은 이 조치에 분개한 나머지 가밀에게 연루되어 벼슬을 잃은 석숭[石崇, 진 대신 석포(石苞)의 아들], 반악(潘岳)과 함께 그해 8월 거병했는데 사마륜의 군대에 의해 토벌되었다. 사마륜은 제왕 사마경에게 [[허창]](許昌)의 군사를 맡기고 지방으로 가서 군사들을 감시하도록 하게 하였다.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차례차례 제거해 나가면서 그는 혜제로부터 [[구석]](九錫)을 받았다. 11월 [[손수]]의 친척인 양헌용(羊獻容)을 아내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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