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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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성'''(산동성, {{zh-stp|s=山东省|t=山東省|p=Shāndōng Shěng}})은 [[중화인민공화국]] 동부의 성이다. [[산둥 반도]]에
== 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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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성은 중국 고대 문화 발양지 중의 한 곳이다. 원시 공동사회 시기엔 이곳에서 [[다원커우 문화]](大汶口文化)와 [[룽산 문화]](龍山文化)가 창조되었다. 유물로 붉은 질그릇, 새까맣게 빛나는 [[흑도]](黑陶)와 원시 방직품이 출토되었다. [[상나라]](商 기원전 약 17세기초~기원전 11세기) 시기에 이르러서는 [[청동기 문화]]가 창조되었다. 그리하여 [[춘추전국시대]], 이곳은 이미 철제 농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진한시대(秦漢 기원전 221년~220년) 이후, 제염과 제철, 방직업이 모두 전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당대(唐 618년~907년)에 와서는 산둥 성의 방직업이 가장 흥성하기도 했다. [[북송]](北宋 960년~1127년) 시대에는 수리사업을 진행하고, [[황하]]를 다스려 전국 인구 조밀도가 가장 높은 곳 중의 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금원(金元 1115년~1368년) 시기에 이르러서는 인구가 유출되면서 경제가 쇠락하기 시작했다. 훗날 [[명나라|명]]초기(明初) 주민이 다시 이입되고,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청나라|청대]](淸 1644년~1911년)에 와선 경제가 더욱 발전했다.
산둥 성은 화북 평원의 동쪽 끝에
[[춘추전국시대]] 동안 화북과 장강 유역에는 여러 나라들이 난립했다. 이 시대에 산둥 지역에는 두 나라가 있었는데, 하나는 [[린쯔]](臨淄)를 근거지로 하는 [[제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취푸]](曲阜)를 근거지로한 [[노나라]]였다. 제나라는 춘추전국시대 동안 계속하여 강국의 위치를 지켰다. 반면에 노나라는 [[공자]]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나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남쪽의 [[초 (춘추전국)|초나라]]에게 병합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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